비움/가끔 영화

영화 - 국가부도의 날

꿈트리숲 2018. 12. 19. 08:34

두 번은 지지 맙시다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왔어요.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마음이 무거워지는 영화였습니다. 20년전 그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다면 과거를 재밌게 추억하는 자리가 됐을텐데. . . 영화 속 얘기와 지금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답답했네요.

이 영화가 왜 지금 만들어졌을까 한번 생각해봤어요.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경제 위기때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구제 금융의 조기 상환이 목적이었기에 빌린 돈을 갚느라 또 그들이 제시한 조건들을 이행하느라 본질을 파악할 새가 없었을거에요. 그리고 경제 위기를 초래한 주역이 이른 성공에 도취되어 과소비한 개인, 일찍 축포를 터뜨린 개인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우리 공동의 문제라고는 여기지 못했을 듯 합니다. 무엇보다 IMF 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우리의 의식과 경제 상황이 어쩌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던 그때를 다시 곱씹어 보도록 하기에 이 영화가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것이겠지요.

실업이 일상이 되는 것도 회사가 망하는 것도 국가가 부도나는 것도 모두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억울합니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산 것 밖에 없는데요. 단지 잘못이라면 거대 자본의 숨겨진 음모를 몰랐다는 것, 그리고 국가가 하는 거짓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그 결과가 너무 참담하고 가혹합니다.

윤정학 : "내가 속을 것 같아? 절대 안 속아!"

영화 속 인물 '윤정학'이 던진 대사는 과연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 . 그 처럼 국가가 하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그래서 속지않고 위기를 기회로 본 것 까지는 좋았는데요. 그 기회에 한 밑천 잡아 큰 부자가 되어서는 그도 20년전 그들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씁쓸했습니다. 아직도 개인이 가난을 구제해야 하고 자기계발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윤정학 같은 인물을 봤기 때문이죠. 항상 깨인 눈으로 사고하고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것은 돈을 좇기 위해, 부를 쌓기 위한 거라고 믿는 분위기에 마음이 헛헛하네요.

한갑수 : "아무도 믿지 말어. 잘해주는 사람도 믿지 말고, 누구도 믿지 말고 너 자신만 믿어."

오늘날의 경제는 신용으로 돌아갑니다. 돈도 마찬가지죠. 믿음을 바탕으로 없던 돈이 계속 만들어지니까요. 믿음이 없으면 사회가 멈출 수도 있어요. 그런데 한갑수는 왜 자식에게 이런 말을 했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됐어요. 자신의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했고, 또 그가 믿음을 배신으로 갚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뼈아픈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진짜 알아야 하는 것에서 살짝 어긋나 있는 느낌입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 제목처럼 아무도 믿지 않고 나만 우리 가족만 잘 살면 결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어요. 재미도 없겠거니와 같이 불행해지는 길을 앞당길 수 있으니까요.

한시현 :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 두 번은 지고 싶지 않거든요."

돈이 곧 정의이고 부자가 인생 목표인 현재에 과연 진짜 정의는 무엇인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는 진짜 목표는 무엇인지 그것을 의심하고 깨인 눈으로 사고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한갑수를 통해 우리 부모 세대의 모습을 보고 윤정학을 통해 젊은 부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나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의 나 속에 꿈틀대고 있는 여러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윤정학도 한갑수도 한시현도 혼재해 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러기에 저는 무지와 무능에 베팅하기 보다 욕망을 제대로 보고 세상을 바르게 읽어내는 나와 우리에 투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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