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가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꿈트리숲 2018. 11. 27. 08:41

전설의 부활

 

저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지금 처럼 음악을 흔하게 접하고 쉽게 소비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었어요. 당연히 인터넷 없었고, MP3도 없던 때였고요. 음악은 주로 라디오, 카세트 테이프, 그리고 LP 레코드로 들을 수 있었죠.

중학교 입학하고 일명 워크맨이라 불리던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가 생겼어요. 카세트 테이프 하나 들어갈 정도의 사이즈에 라디오도 되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도 할 수 있는 그 당시 청소년들에겐 제일 갖고 싶은 최애품이었어요. 요즘으로치면 아이폰 정도?라고 할까요?

워크맨을 학교 갈때도 항상 휴대하며 이동 중에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신세계를 영접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은 거의 다 팝송이었는데요. 왠지 모르게 팝송이 저의 감성에 어울린다 느꼈어요. 가사의 뜻은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죠. 팝송을 발굴해낼 수 있는 2시의 데이트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곡들을 선별하고 가수도 알아두고 저만의 리스트를 만드느라 많이 분주한 10대 시절이었습니다.

좋은 노래들은 제목 알아뒀다가 레코드 가게 가서 카세트 테이프를 사기도 하고요. 한 앨범에 맘에 드는 곡들만 들어있는게 아니다 보니 원하는 노래들만 모아서 짜깁기를 해야해요. 그럴땐 레코드 가게에 주문을 넣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 제목 적어서 A/B 사이드, 순서만 정해주면 레코드 가게 사장님이 멋지게 녹음을 해주시죠. 그렇게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는 친구들 생일 선물로도 정말 인기 좋았어요.

A/B 사이드에 빠짐없이 들어가던 노래가 바로 퀸의 노래들이었습니다. 피아노로 감성을 깨우고 하프 선율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들의 노래가 십대의 취향을 저격하기에 안성맞춤이었거든요. 퀸의 노래로 테이프 선물하는 저는 팝송 좀 아는 여자로 인식되기도 했어요. 저의 사춘기를 함께 지내왔던 영국의 여왕, 그 여왕의 노래로 십대가 참 행복했네요. 가슴뛰는 피아노 전주만 들어도 온몸에 전율이 이는 보헤미안 랩소디! 어른이 되어서는 그 가사와 프레디의 삶을 같이 이해해보는 것으로 다시금 퀸을 부르고 느끼게 되더라구요.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40~50대 층이 많이 봤을거라 생각했는데, 20~30대가 주 관람층이라고 하더라구요. 향수를 느끼는 제 나이대 사람들도 있지만 세대 불문하고 퀸의 노래가 사랑받구나 싶었어요. 프레디 머큐리의 역할을 맡은 라미 말렉 배우가 완벽 재연했다 아니다 말은 많지만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연기라 저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흔히 밴드는 망해서 없어지기 보다 해체되어 없어진다고 하더니 퀸 역시도 큰 성공 이후에 서로 간의 갈등으로 잠시 활동을 접은 적이 있어요. 멤버간의 불화없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프레디, 그러나 별로 즐겁지가 않습니다. 다시 멤버들과 재결합 후 프레디가 얘기해요. 솔로 활동하며 꾸린 팀은 내가 원하는 음악을 그대로 만들었다고요. 그런데 재미가 없대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만 할뿐 딱 거기까지였답니다. 퀸과 작업할 때는 불만을 제기하는 멤버, 노래 수정해주는 멤버, 같이 작업하는 자체가 재밌는 멤버들이 있었는데, 있을 땐 모르다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거죠. 그들의 소중함을요.

프레디의 가정은 이민 가정입니다. 영국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 받는 것이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었던 걸까요. 프레디 아버지는 항상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아들에게 강조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성공적으로 그 사회에 안착하는 방법이라 여겼는지도 몰라요. 내성적인 프레디에게 그런 가르침은 맞지 않았던 듯 싶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프레디는 억눌러졌던 내면의 감성을 무대에서 의상으로 노래로 폭발시키는 것 같더라구요. 아버지 앞에서 순응만 하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던 그는 퀸의 노래와, 그룹의 방향, 그리고 세상을 자기의 노래로 움직이는 꿈을 품은 것 같아요.

전설이 되고 싶어 했고,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이 정하고 싶었던 그는 전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공 이후의 삶을 그려본 적이 없었던지라 예고 없이 밀려오는 공허함을 쾌락으로 채웁니다. 쾌락은 일시적일 뿐, 외로움을 행복감으로 치환해주지 못해요.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구요. '내가 썩었다는 걸 언제 느끼는지 알아? 날파리가 꼬일 때야'라는 그의 대사에서 후회와 삶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간절함이 느껴지더라구요.

이전까지 퀸의 노래와 프레디에 대해서만 드문드문 알고있었던 저였는데,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로 퀸 밴드의 역사와 그들의 삶을 알게 되어서 더 없이 좋았어요. 더불어 퀸의 노래만 알던 남편과 딸에게 퀸을 소개해줄 수 있어서도 좋았구요. 영화관 사운드로 듣는 그들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고 싶지 않게 여운이 많이 남더라구요.

전설은 가고 없지만 퀸의 노래는 계속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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