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보자기

꿈트리숲 2019. 2. 1. 06:49

비단결 같은 고운 심성

예쁜 보자기 찾아 삼만리 해서 찾은 사진이에요. 사진 출처는 "Le vien" 입니다.

설 명절이 다가와서 부모님들께 선물을 보내려고 과일을 준비했어요. 박스째 보내자니 왠지 성의가 없어보여 보자기 포장을 했습니다. 요즘 선물 과대 포장이 환경 오염이 된다는 뉴스가 있어서 고심하다가 그래도 부모님들은 보자기 같은 경우엔 재활용을 잘 하시는 것 같아서 보자기 포장을 했지요.

과일 박스가 크고 보자기도 크다 보니 박스 포장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라구요. 힘쎈 사람이 단단하게 잡아당겨야 풀어지지 않고 여며질 것 같은데,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인 것 같아서 딸과 2인 1조로 어찌어찌 해결했네요. 보자기 포장의 백미는 포장 후에 매듭이 예쁘게 여며진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각형의 보자기를 펼쳤을 때 네개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부분이 매듭이 되었을때는 마치 한 송이 꽃이 핀 것처럼 네 귀퉁이가 사방으로 활짝 펼쳐지게 만드는 것이 보자기 포장의 화룡점정인 것 같아요.

저와 딸이 보자기와 씨름해가며 만든 매듭은 한쪽으로 쏠린 피다만 잎처럼 되더라구요. 재주가 메주요, 체력은 순두부인 저의 손에서 멋진 매듭은 탄생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택배 발송하고 잘 마무리 했어요. 문득 보자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순수 비단으로 사용했을텐데, 요즘은 비단인 듯 비단아닌 비단 같은 폴리 보자기로 많이 사용하죠.

제가 쓴 것도 아마 폴리나 나일론 혼방일 것 같은데요. 흔히 우리가 비단결 같다고 표현하는 그 느낌을 살리려, 가격도 저렴해서 화학섬유 재질을 사용하는 거겠죠. 비단결 같은 보자기가 고급스러워 보여서 선물에는 좋을 것 같긴 한데, 포장을 하면서 보니 박스 모서리와는 그다지 좋은 궁합이 아니더라구요. 힘줘서 몇번 당기고 밀고 하니까 모서리 닿은 부분은 천이 해지는 겁니다. 좀더 투박하거나 두꺼웠으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했어요.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심성이 고운 사람을 우리는 비단결 같다고 표현을 하는데요. 비단결로 감싸는 사람은 안에 내용물이 무엇이든 간에 감싸 안아야 해요. 거친 돌덩이라면 천이 해져도 감내해야 하고, 냄새 나는 생선이라면 자신에게 스며든 비린내를 감수해야 하는거죠. 비단결 보자기가 남에게 보여지기에는 있어 보여 좋을 지 몰라도 사람에게 있어 비단결 같다는 말은 어쩌면 무언의 압박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하는 사람. 겉은 좋아 보이는데, 속은 과연 무사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비단결이라고 얘기함으로써 나는 그의 희생을 공짜로 받고 있는지도요. 나의 부당한 요구도 들어 주고, 불평 불만을 다 받아 주고, 모난 성격 감싸 주고, 불같은 화를 누그러뜨리느라 비단 보자기는 해지고 까지고 너덜너덜해져요. 비단은 차치하고서라도 보자기로서의 생명조차 장담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비단 보자기 안에 다 감싸느라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오버랩되네요.

화려하고 매끈한 비단결 보다 저는 차라리 보기에는 투박하고 멋없는 광목이 더 좋겠다 싶어요. 적당히 남도 감쌀 수 있으면서 또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비단결일때 모두가 비단으로 대해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니 사람에 상처받는 일이 부지기수잖아요. 그러니 마음 편히 살려면 사람 좋다는 소리, 심성이 비단결 같다는 소리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싶네요 .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정합시다. 남들이 비단결로 정한대로 따라가지 말고 심심한 광목이어도 나를 지키고 남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떨까요.

명절을 앞에 두고 보자기 하나로 여기까지 왔네요. 연휴 잘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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