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10

꿈트리숲 2019. 6. 3. 06:58

토지의 욕망, 사람의 욕심

 

 

월요일은 토지 하는 날... 토지 잘 하는 토지 블로그이고 싶은 꿈트리 꿈틀꿈틀입니다. 어느덧 10, 스무 권의 절반을 왔어요. 매주 한편씩 후기를 쓰지만 사실 대작을 읽고 그 감동과 재미를 표현하기엔 많이 모자란다 생각해요.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요. 그래도 계속해서 후기를 남겨봅니다. 기록이니까요. 나중에 글을 보고서 내가 지나온 과정을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부족한 글이 모이고 쌓여서 좋은 글로 조금씩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어서요. 5부 능선 넘은 저를 셀프 축하하며, 10권의 얘기 이어갑니다.

 

10권에서는 홍이의 얘기를 비중있게 다룹니다. 작가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느낌인데요. 그도 그럴 것이 서희와 길상이도 가져보지 못한 혼인 얘기가 상세하게 나와요. 서희와 길상이는 사귀는 얘기도 없이, 결혼해버렸고 또 결혼도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면 토지에서는 누구하나 내가 주인공이야 하고 나서는 것 같지가 않아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인생의 주인공, 토지의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토지가 더 매력적입니다. 삶의 뒤안길에 나앉은 용이도, 모든 걸 가졌지만 정작 남편을 가질 수 없는 서희도 토지의 배경이자 토지의 리더들이에요.

 

홍이는 용이와 임이네 사이에 생겨난 태생부터가 불운한 아이입니다. 아비 어미가 그토록 원한 아이는 아니었거든요. 태어나보니 아비와 어미, 그리고 월선의 삼각관계가 심각했었어요.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면서 정서적 불안정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을테고요. 그리고 어미라는 사람이 세상 온갖 욕심은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사람이었기에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모욕적인 일이었을까 싶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간도에서 월선의 손에 자랐기에 학교도 다니고 멋진 청년으로 클 수 있었지요. 월선의 죽음이후 하동으로 돌아온 홍이는 삐뚤어질테다 작정했는지 술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여자(장이)를 겁탈도 했어요. 홍이의 고뇌를 의논할 멘토나 제대로 된 어른이 있었다면 방황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갔을 듯싶은데, 먹고 살기 바쁜 1920년대 어른들은 자식의 몸은 물론이요 마음까지 보살피고 어루만져 줄 여유 한 움큼이 없었습니다.

 

p 146 정확하게 말하자면 홍이는 죄의식 때문에 진주로 왔다. 장이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죄의식이지만 다른 또 하나의 죄의식, 밟아 뭉개고 싶지만 훨씬 더 쓰라리고 괴로운 감정, 때문에 진주로 왔다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에 대한 것이다. (중략) 상대로부터 어떤 고통을 받든 피해를 받든 가해자는 거부하는 쪽이다. 깊은 관계일수록 특히 혈연관계일수록 거부에는 죄의식이 따르게 마련이다.

 

홍이는 지금 부산에 자전거 가게에서 알바 중입니다. 집을 뛰쳐나갔어요. 어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갔지만 다시 돌아왔네요. 몸은 벗어났어도 마음까지는 떨쳐버릴 수 없었던가봐요. 가까이 있으면 어미의 못난 부분만 보이다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임이네에게 연민까지 생기는, 그래서 죄의식을 느끼는 홍이입니다.

 

실상 홍이가 사랑하는 장이에게 청혼을 못하는 이유도 임이네 때문이거든요. 살인죄인의(예전 최치수 살인사건에 가담한 칠성이) 아내라는 굴레가 아직 씌워져 있고, 욕심과 욕망만 남은 것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괴로운 와중에 장이의 결혼 소식이 들려서 장이를 찾아와 본거에요. 결혼해서 일본으로 갈 장이를 한번 보려고요. 장이 역시도 홍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이 둘의 정리되지 않은 감정선은 후에 불륜으로 이어지는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작품 속 내용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옛날에도 불륜과 이혼이 제법 많더라구요. 제도의 굴레 속에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생각했는데, 감정의 동물은 이성적 제도도 훌쩍 뛰어넘나 봅니다.

 

홍이의 결혼 상대는 김훈장의 외손녀 보연입니다. 김훈장은 선영봉사를 위해서 사돈에 팔촌까지 수소문해 거의 남과 다름없는 한경이라는 인물을 아들로 들였어요. 그러면서 하나있는 딸, 점아기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딸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그 중 맞딸인 보연이가 홍이의 짝이 됩니다.

 

p 181 모든 조건에서 홍이만 한 사윗감은 없다. 그러나 임이네가 치명적인 것이다. 처녀시절 한 마을에서 시종하여 임이네 행적을 보아왔고 글어온 점아기로서는 그것을 무시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불미스러운 가지가지 풍문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인물로보나 학식으로 보나 홍이는 둘도없는 사윗감인데, 시어머니 자리가 영 마뜩찮아요. 그런 자리라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보연이의 성격도 한 몫을 하기에 결혼을 시키려합니다. 부족함과 부족함이 만나는 것이 결혼이지만 그 부족함이나마 상대를 채워주는 것으로 소용되지 않고 상대를 더 깎아 내리는 것이 되면 어쩌나 싶어 이 결혼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네요.

 

p 245 하늘과 산과 강물같이 홍이는 진정 무심하다. 별난 것도 없고 별나게 살아서도 안 될 것이며 두드러지게 보여도 안 될 것이다. 세상은 살아가기 힘든 곳이지만 쉽게 살 수 없는 곳도 아닐 것이다. 뜨겁게 살 수 없다 하여 차갑게 살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홍이는 마음의 불안을 잠재우는 주술이라도 거는 것 같습니다. 따로 마음 두었던 장이를 숨기고 모든 이의 손가락질을 받던 어미도 이 순간 잠시 남이 되는 것 같습니다. 홀로 설 각오로 담담하게 처가로 발걸음을 들이는데요.

 

p 250 하느님은 이들을 위해 날씨 부조를 아니한 것이다.

 

사람들의 부조를 받아도 날씨 부조를 못 받은 홍이와 보연이의 앞날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게 됨을 작가가 넌지시 알려줍니다. 암울한 시대에도 꽃은 피고 지고 생명은 나고 죽고 똑같이 흘러갑니다. 그것이 토지의 욕망이기에 그렇고, 사람의 욕심이기에 그렇습니다. 작가가 알려주려 한 것이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싶어요. 밟아도 피어나는 꽃, 찍어 눌러도 새 생명이 태어나는 사람. 그들의 무한생명 토대는 바로 토지라는 것을요.

절반을 돌아 후반부로 접어드는 토지, 11권은 다음주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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