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페스트

꿈트리숲 2020. 4. 20. 06:00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자기 발밑에 꿇어 앉혔다. (267쪽)

 

지금 코로나는 전 세계를 무대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페스트>가 예사로이 넘어가지 않네요. 페스트와 코로나, 한 도시와 전 세계 사이에 차이는 있겠지만 전염병이 번질 때의 혼란과 전염병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함께’의 힘으로 전염병을 극복하는 과정이 지금과 많이 비슷하다 싶어요.

 

194X년 프랑스 오랑에 어느 날부턴가 죽은 쥐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빈민가부터 점검에 들어가는데요. 빈민가는 죽은 쥐의 사체가 도처에 널려있었죠. 그러는 와중에 페스트로인해 건물의 수위가 죽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갑니다.

 

도시는 봉쇄되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아프거나 죽는 사람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했다면 도시가 봉쇄된 이후는 이제 너와 나 따질 것 없이 페스트가 공통의 문제이자 공동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랑에 연고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떠나려고 하고, 갑자기 생이별을 하게 된 가족들, 연인들에게는 기약할 수 없는 유배 생활이 시작됩니다.

 

1월에 코로나가 중국 우한에서 급속도로 번지면서 우한 전체가 봉쇄되었었죠. 그때 어떻게든 우한을 탈출하려던 행렬이 기억납니다. 우한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도 전세기로 급히 들어오고 입국 후에는 임시 수용소에서 격리 생활을 했는데요.

 

카뮈가 마치 현 상황을 보고 글을 쓴 것 마냥 어쩜 소설 속의 상황과 현재가 이리도 똑같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심지어 수용소에 있는 격리자들에게 주는 식사마저도 비대면으로 하는 것이 20세기와 21세기가 거의 일치 한다 할 정도거든요.

 

역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전기 자동차 두 대가 커다란 냄비들을 싣고는 천막들 사이를 지나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두 팔을 뻗어서 두 개의 국자를 그 두 냄비에 담갔다가 건져서 음식물을 두 개의 그릇 안에 쏟았다. 차는 다시 움직였다. 다음 천막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343쪽)

 

카뮈는 전염병이 창궐해 도시 전체가 봉쇄된 20세기 오랑을 그리면서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 때 인간은 어떤 모습이 되는지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의사인 리외는 전문 지식과 성실성으로 페스트와 싸우려 하고, 신문기자인 랑베르는 타지인이라고 하루 빨리 도시를 탈출하려 합니다. 한편 페스트가 신의 심판이라 믿는 파늘루 신부는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가 페스트로 죽는 걸 목격하고선 자신의 설교에 힘을 잃고 말아요. 랑베르와 마찬가지로 외지인인 타루의 대처는 랑베르와는 사뭇 다릅니다.

 

의사의 힘만으로는 도시 전체를 무릎 꿇린 페스트를 극복할 수 없다며 자원봉사 조직을 결성하여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모두가 두려움에 떨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사람과, 찾아가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군요. 마치 우리처럼요.

 

한때 대구에서 하루 확진자 수가 수백 명에 달할 때 전국에서 모여든 의료진을 보면서 직업적 소명 의식이 떠올랐어요. 땀에 젖은 수술복, 마스크 자국 선명히 남은 얼굴을 보면서는 제 마음이 그냥 뭉클해지더라고요.

 

그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그들과 같은 국민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페스트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형무소장부터 말단 죄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유죄 선고를 받은 처지였다. 그래서 아마도 처음으로, 절대적인 정의가 감옥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241쪽)

 

이는 감옥 내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염병 상황에선 모두가 유죄 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다 싶어요. 코로나로 외국의 유명인들도 정치인들도 감염이 되고 사망자도 나오고 하니까요. 빈부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치명적 바이러스 앞에 목숨은 평등하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이런 식의 평등은 누구도 환영하지 않겠지요.

 

4월에 시작된 오랑시의 페스트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멈출 줄 모르다가 차츰 감염자 수가 줄어들고, 병에서 회복되는 환자 수는 한 명 두 명 늘어가죠. 도시는 봉쇄 해제와 함께 페스트 종말을 선포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기쁨의 환희를 쏟아냅니다.

 

그러나 페스트 제1선에서 함께 싸웠던 타루와 리외는 마치 우리 들으라는 듯 일침을 남깁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페스트로부터 무사한 사람은 없기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페스트균은 절대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어딘가 숨죽이고 있다가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줄 필요가 있을 때 또 나타난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이 말 또한 믿고 싶습니다.

인간들은 항상 똑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들의 힘이고 그들의 순수함인 것이다. (438쪽)

똑같은 문제를 반복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뭉친 힘으로, 순수함 그 자체인 선의의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거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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