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그리스인 조르바

꿈트리숲 2020. 5. 4. 06:00

 

 

문사철 50권 결심했을 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꼭 완독하리라 마음먹었는데요. 매번 앞부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곤 해서 이제야 끝을 보게 됐습니다.

 

7년 전 고미숙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를 만났을 때 조르바의 이름을 듣게 되었어요. 저작 능력, 독서 경험을 닮고 싶은 두 분이 강력추천하셔서 북 리스트에 저장해두었던 책입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줄거리는  ‘나’와 조르바가 갈탄광 사업으로 만나 크레타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 건데요. ‘나’는 바로 이 책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자키스입니다. 저자는 갈탄광 사업에도 그리고 섬에서의 일들에도 깊이 관여하기 보다는 관찰자의 입장을 취합니다.

 

그런 저자가 관심을 두는 것이 있었으니 조르바에 대한 모든 것이었죠. 삼십 대 중후반인 저자의 눈에 비친 육십 중반의 조르바는 다른 나이 든 사람과 달랐습니다. 나이라는 숫자를 지우고서라도 조르바와 일치하는 사람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어요.

 

나는 조르바야말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임을 깨달았다. 생동감이 넘치는 마음과 뜨거운 목구멍을 가진,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에게서 미처 탯줄을 자르지 못한, 길들어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 (34쪽)

 

화자와 조르바가 처음 만나 하루도 지나지 않은 채 저자는 조르바가 오랫동안 찾던 바로 그 사람임을 직감합니다. 자유를 갈구했던 ‘나’에게 조르바는 체면과 눈치의 족쇄 같은 건 쉽게 벗어던지는 사람이었죠. 저자에게 ‘대장’이라는 칭호를 써가며 말을 높이는 조르바는 돈과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롭게 사는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크레타 섬으로 자신을 왜 데리고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이나 부끄럼 없이 젊은 저자에게 적극 PR을 합니다. 길들어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 예순이 넘었지만 정열과 욕망이 펄떡이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조르바는 가는 곳마다 연인을 만들고 머무는 곳마다 조르바 폐인을 양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인간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수도사들처럼 금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물 나도록 실컷 즐겨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라고요. 우리가 스스로 악마가 돼보지 않고 어떻게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요!” (343쪽)

 

이렇게 멋진 말은 학자나 책상물림 같은 이 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방끈 짧은 조르바는 인생의 진리를, 진정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저자도 조르바의 이런 면면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는데요.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118쪽)

 

오히려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에 자유라는 것이 금욕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았던 것 아닐까 싶어요. 신물 나도록 실컷 즐기고 나면 비로소 욕망에서 벗어나는 경험 저도 해봤거든요. 조르바의 말에 힘이 실리는 대목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철저히 믿고 따르는 조르바에게서 지금 여기를 사는 모습이 보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고싶어하는 ‘현재’를 조르바는 살고 있어요. 타인의 말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요.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절대로, 정말 절대로 더 낫지 않죠! 그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놈만을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들이에요. 조르바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조르바의 귀로 듣고, 조르바의 위장으로 소화하죠. 다른 모든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헛것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들도 죽죠. 조르바의 세계 전체가 바닥으로 사라지죠!” (104쪽)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조르바는 이미 깨쳤어요. 나이에서 오는 연륜이라고 하기엔 뭔가 아쉽고 경험의 더께라고 하기에도 그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보입니다. 내가 내 몸으로 느끼는 감정, 생각, 경험 등 오로지 이런 것들만이 진짜라는 거죠. 그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나만의 것입니다.

 

조르바의 내면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자유를 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수여도 당당하게, 실패해도 떳떳하게, 실연을 당해도 자신있게 다음 사랑을 또 할 수 있는 그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오늘을 사는 자유인이라 생각되네요. 나를 믿고 순간을 독립적으로 사는 진정한 자유인!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12) 2020.05.18
달과 6펜스  (14) 2020.05.11
셰익스피어 5대 희극  (13) 2020.04.27
페스트  (14) 2020.04.20
구운몽  (15) 2020.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