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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 하이쿠 선집

꿈트리숲 2020. 5. 7. 06:00

작년부터 내내 읽고자 했던 <바쇼 하이쿠 선집> 이제야 만나게 됐습니다. 창의성 놀이로 좋다고만 알고 있던 하이쿠의 내막을 켜켜이 다 들여다본 기분이 드네요. 하이쿠만 알았지 바쇼에 대해선 깜깜했던 제가 <바쇼 하이쿠 선집>을 읽고선 바쇼라는 인물의 매력에 더 빠지는 것 같습니다.

 

마쓰오 바쇼는 일본 문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이며, 일본인이 좋아하는 문인 다섯 명 안에 드는 시인이다. 열일곱 자로 된 짧은 시로 시문학에 혁명을 일으키고, 해학과 언어유희에 치우치던 시를 예술 차원으로 끌어올린 하이쿠의 완성자이다. (340쪽)

 

하이쿠는 ‘하이카이 렌가의 홋쿠’를 줄인 말이라고 합니다. 렌가는 중세 일본의 귀족 계층이나 승려들이 읊던 집단 창작시였어요. 렌가가 너무 지적이고 귀족적이다 보니 서민층에서는 자신들만의 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요. 해학적이면서 익살과 재치를 더한 시 형식이 등장하게 됐죠. 이를 일컬어 ‘하이카이 렌가’라고 했다는군요. 홋쿠는 렌가의 첫 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홋쿠에는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이 있었어요. 5.7.5의 음수율을 지키고,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인 계어를 포함시켜야 하며, 시의 운율을 위해 조사나 조동사에 해당하는 ‘끊는 말(기레지)’을 넣는 것인데요. 이 규칙이 나중에 그대로 하이쿠의 규칙이 되었다고 해요.

 

하이쿠 선집을 쭉 읽다 보니 계어라고 하면서 각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눈에 띄었어요. 안개를 봄의 계어로, 모란을 여름의 계어로 쓰고요. 가을의 계어로는 번개를, 겨울의 계어로는 대청소를 쓰는 식이지요. 이런 하이쿠의 규칙을 잘 지키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 시를 만들어 낸 바쇼가 대단해 보입니다.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의 해설과 함께 하는데요. 류시화 시인은 우리가 바쇼의 하이쿠를 읽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의 최우수 작들을 읽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열일곱 자 안에 작가의 삶과 문학 정신을 다 풀어 놓았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모든 것을 풀어놓기만 한다면 당연히 좋은 시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함축과 압축이 좋은 시의 전제 조건이 되겠죠. 바쇼 역시 제자들에게 “다 말해 버리면 시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했다는군요.

 

무릇 시라는 것은 짧은 글자 수에 시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게 묘미지요. 이는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시인의 생각을 유추해 보거나 자신만의 언어로 풀이해보는 재미를 더 배가시키는 것 같아요.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안의 시인을 깨우는 일이라고 하는데요. 바쇼의 하이쿠는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감성을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데 안성맞춤인 듯합니다.

 

바쇼는 37세에 돌연 은둔 생활을 시작하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지냈어요.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꿈치가 닳도록 수 천 킬로에 달하는 도보 여행을 몇 번이나 하면서 그의 시의 세계가 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자연과 더 가까워졌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곧 바쇼이고 바쇼의 삶이 곧 하이쿠였던 거죠.

 

오래된 연못 (후루이케야)

개구리 뛰어드는 (카와즈 토비코므)

물소리 (미즈노오토)

 

이것이 바쇼 하이쿠의 대표작인데요. 류시화 시인은 이런 해설을 덧붙입니다.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면서 일순간 적막이 깨진다. 그 파문이 마음속까지 번진다. 시간, 공간, 사물, 그리고 계절의 흐름이 17자 안에 존재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상상에 빠져들게 한다. (57쪽)

 

전 시를 읽는 초짜 독자라서 그런지 해설을 읽고 이해하게 됩니다. 눈을 감고 고요한 고택을 상상했어요. 고택의 정원엔 오래된 연못이 있는데 갑자기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어 파문을 일으키는 장면. 어쩌면 6, 7월쯤 어스름 달이 비치는 연못이면 더 정겹지 않을까요?

 

자신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고,

타인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다. (책 뒤표지)

 

자신의 길에서 생을 다한 바쇼는 그의 하이쿠로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바쇼 스피릿 주입하고 저도 하이쿠를 지어봤는데요. 글자 수만 맞춘 감이 없지 않아요. 그래도 은근 재밌습니다. 창의성도 길러진다고 하니 심심할 때 한 번씩 하이쿠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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