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혼밥의 정석

꿈트리숲 2020. 5. 28. 06:00

 

그림-little space

 

길고 긴 방학을 마치고 아이가 드디어 등교를 했습니다. 등교 전에 선생님으로부터 안전에 관련한 여러 안내 문자를 받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학교에 갔어요. 담임 선생님은 걱정되는 부모 마음을 어떻게 아시고 첫날 학교 풍경에 대해 안내 문자를 주시더라고요. 덕분에 한시름 놓았습니다.

 

너무 오래 쉬었던 탓일까요? 아이는 학교 가는 걸 잊어버린 듯 등교 전날 설렘 반 두려움 반 잠을 못 이뤘습니다. 뭐 밀린 숙제 벼락치기 하느라 못 잔 것도 있고요.

등교 개학이 되긴했지만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의 우려가 있어 1주일 등교하고 2주는 원격수업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5개월 만에 학교 급식을 먹고 온 아이는 맛있었다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군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저는 점심을 혼자 먹기 시작했어요. 가끔 밖에서 약속 있는 날 빼고 거의 10년을 혼자서 점심을 먹어왔네요.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돌이켜보니 10년, 제법 긴 시간입니다.

 

매년 여름 한 달, 겨울 한 달 방학 때만 아이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나머지 열 달은 오롯이 혼자 해결했으니 이때쯤이면 혼밥의 달인이 되어야 맞는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저는 저만을 위해서 진수성찬을 차려 본 기억이 별로 없네요. 혼밥이라 대충 때웠던 것 같아요.

 

지난 다섯 달 동안 아이가 만들어주는 점심, 제가 준비하는 한 끼, 때로는 둘이서 하는 외식을 먹으며 보냈어요.

딸과의 점심시간은 겨울을 통과하고 꽃샘추위도 견뎌내고 때 이른 더위도 감당할 만큼 온기가 넘치고 끈끈하며 썰렁한 웃음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죠. 그런 시간을 뒤로하고 어제 실로 오랜만에 혼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10년간 혼자 점심을 먹었으면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졌을텐데 뭔가 어색한 시간만 째깍째깍 흐릅니다.

밥 한술 뜨고 깔깔깔 웃던 모녀는 온데간데없고 젓가락 딸그락거리는 소리, 국그릇에 숟가락 휘휘 젓는 소리만 들릴 뿐이네요.

 

일이 있어 밖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때면 저는 어색한 마음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는데요. 책 보면서 먹거나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먹거나 하기에 남의 눈치가 보인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그런데 어제 갑자기 혼자 먹는 점심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그간 방학이 너무 길었던 탓이겠죠. 다섯 달을 아이와 붙어서 지지고 볶고 했으니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봄이 왔다고 벗을 때 느낌이랄까요. 제 2의 스킨 같은 내복을 벗을 때 그 느낌 아시죠? 마치 한 꺼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요.

 

밥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식탁이 허전해서인지 마음까지 허전해집니다.

혼자서도 밥을 잘 차려 먹고 배고프면 참지 말고 먹어야 하는데, 전 끼니때도 놓치고 대충 먹어 치웠어요. 아이가 고등학교 대학교 가고 어른이 되면 그때는 저 혼자 먹는 날이 더 많아질텐데, 이런 허전한 마음에 익숙해져야겠습니다.

 

제 나이, 그러니까 엄마로서의 나이가 만으로 열다섯인데요. 엄마 나이로 사춘기에 접어든 모양이에요. 아이가 학교 가는 뒷모습을 보며 센치해지고 혼밥하며 허전해하니 말입니다.
전 ‘수학의 정석’을 고등학교 때 너덜너덜하게 풀었어요. 덕분에 대학생 때 중학생 수학 과외를 했었죠.

수학의 정석처럼 혼밥의 정석도 잘 풀어낼 수 있을까요? 멋지게 풀어내어 혼밥대장이 되어도 좋겠다 싶은데요.

나를 위해 손수 준비하는 혼밥, 그 혼밥의 정석 풀이법 가지고 계시면 우리 같이 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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