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열하일기

꿈트리숲 2020. 6. 1. 06:00

 

 

조선 최고의 여행기,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여행기, 열하일기!

허생전의 저자 연암 박지원이 중국 열하를 여행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책 열하일기는 지금 당장 어디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인데요. 연암이 한 것처럼 관찰하고 살피고 듣고 적고 하면서 저의 견문을 넓히고 식견을 도탑게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옵니다.

 

열하는 지금의 중국 청더시(承德市)인데요. 베이징에서 동북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청나라 때 황제가 여름에 피서갔던 곳이라고 해요. 열하는 여름 피서별궁의 의미도 있지만 몽골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황제가 열하에 머무르며 자신의 세를 과시해 이민족의 침략을 막는 의미도 있었다고 하는군요.

 

청 건륭제의 만수절(칠순잔치)에 축하 사절로 가게 된 8촌 형인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박지원이 동행하면서 열하일기의 대장정이 시작됩니다. 애초에 연경(베이징)까지만 계획되었던 여정이 연경에 도착하자 갑자기 열하로 변경되어 조선인 최초로 열하일기를 남길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된 것이지요.

 

열하일기 속에는 연암의 관찰일기 뿐만 아니라 청인들과 나눈 필담, 전해들은 이야기 그리고 연암의 사유까지 더해져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다 싶은데요. 박지원은 조선 후기 노론 명문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유교를 숭상하는 고정관념과 양반의 체통을 고수할 것 같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박지원은 거리로 나가서 좌우 위아래 가릴 것 없이 여러 사람과 소통을 합니다. 그의 이런 태도가 열하일기에도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데요. 자신의 여정에 마부로 함께 간 하인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연암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잘 말해줍니다.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요?”

“오호, 고놈, 하인은 주인을 닮아간다더니, 네가 요즘 질문이 부쩍 늘었구나. 좋은 징조다. 물음이 많다는 것은 알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이고, 알고 싶은 것이 많으면 지식이 늘어나고, 지식이 늘어가면 세상을 다르게 보고,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단다.”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 100쪽)

 

마부 창대의 시선에서 자신의 나리를 기술한 내용인데요. 이 외에도 말에 대해 창대와 얘기 나누다 연암이 오히려 깨달음을 얻기도 합니다. 양반의 신분이지만 연암은 사람을 대할 때는 모두가 스승이고 배울 점이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열린 마음을 가진 연암은 그 사고 또한 세상 만물을 향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조선 시대에는 연경에 다녀온 사람들에게서 그곳 소식을 듣는 것이 마치 우리가 다른 이의 블로그 여행기를 읽는 거와 비슷하지 싶은데요.

보통의 블로거들이 맛집, 관광지 위주로 포스팅한다면 연암은 현지인들만 아는 곳을 소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 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上 241쪽)

 

대부분의 선비들이 연경을 다녀와서 제일 좋았던 것을 읊을 때 으레 말하는 장소나 사물이 아닌 기와 조각과 똥덩어리라고 말하는 데서 연암의 남다른 시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물건, 더러운 물건이라 여기는 깨진 기와 조각과 똥오줌을 청인들이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깊이 생각해보았을 연암. 누군가는 쓸모없고 더럽다 피해가는 것을 연암은 유심히 보았던 것이지요.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분명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 남들이 보지 않으려는 것까지 다 자세히 관찰하고 사유하는 사람임을 연암을 통해서 확실히 느끼겠습니다.

 

열하일기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일야구도하기(一夜九度河記)’인데요.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마부 창대가 발을 다쳐 연암의 말을 끌 수 없는 상황에서 홀로 폭우로 범람한 강을 건너는 이야기는 우리의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낮에는 강물을 볼 수 있으니까 위험을 직접 보며 벌벌 떠느라 그 눈이 근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어찌 귀에 들리는 게 있겠는가. 지금 나는 한밤중에 강을 건너느라 눈으로는 위험한 것을 볼 수 없다. 그러니 위험은 오로지 듣는 것에만 쏠리고, 그 바람에 귀는 두려워 떨며 근심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이제야 도道를 알았다. 명심冥心이 있는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의 누累가 되지 않고, 귀와 눈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섬세해져서 갈수록 병이 된다. 명심은 너와 나를 구분하고 차별하지 않는 마음이다. (중략) 물을 땅이라 생각하고, 물을 옷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몸이라 생각하고, 물을 내 마음이라 생각하리라. 그렇게 한번 떨어질 각오를 하자 마침내 내 귀에는 강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법이나 강을 건넜건만 아무 근심 없이 자리에서 앉았다 누웠다 그야말로 자유자재한 경지였다. (낭송 열하일기 148~149쪽)

 

귀와 눈에 의지해 사물을 판별한다면 우리는 근거 없는 차별의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소란스럽고 요란한 일에 마음을 뺏겨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릴 수가 있죠. 그러니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설픈 두려움에서 벗어나 도道에 이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미숙 선생님이 저술하는 책마다 연암의 이야기를 열하일기를 하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격식 없는 자유인, 호기심과 관찰력을 겸비한 문장가, 열린 마음의 생활 철학가. 이 모든 사람이 연암 박지원이요. 이 모든 사람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책이  열하일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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