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만화 사기열전 사기어록

꿈트리숲 2020. 6. 8. 06:00

역사서 <사기>가 항상 저의 찜 목록 상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되어 쉽사리 도전을 엄두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기> 중에 <사기열전>이라도 읽어보자 하고 책을 펼쳤지만 그것 역시 만만치 않은 두께에요.

 

정공법이 안되면 우회공략을 해볼 참으로 <사기어록>과 <만화 사기열전>으로 <사기> 미리보기를 합니다. 미리보기로 예습이 되면 실전은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벽돌책의 진입 장벽을 좀 낮춰보려고요.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디면서 자신의 혼을 담아 써내 <사기>는 하나같이 명언 명구로 장식된 정교한 갑옷 같은 책이다. 삶의 가혹한 조건 속에서 탄생한 명작이기에 깊은 생각의 단초들이 행간에 녹아 있다. (사기어록 서문 中)

 

<사기>는 사마천이 지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실거예요. 사마천은 한 무제 때  태사령 벼슬을 지낸 인물입니다. 태사령은 천문을 담당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아버지 사마담에 이어 사마천도 태사령을 지냈었죠.

 

사마담은 태사가 되면 천문을 관측해서 하늘의 변화를 알아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그 기대와 달리 달력을 만들고 왕실의 중요 행사에 맞춰 길일 선택하는 단순한 일들을 했었다고 해요.

 

그래서 역사를 쓰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는데 과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게 되어 사마천에게 유언을 합니다. 자신을 이어서 역사서 쓰는 걸 꼭 완성해 달라고요.

 

사마천은 아버지가 역사를 집필하고 있을 때 바쁜 아버지 대신해서 현장 답사로 전국을 누볐고요. 왕실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덕분에 왕실 도서관에서 공식 문서들을 쉽게 볼 수 있었죠. 그리고 아버지 유품으로 남은 자료까지 더해져 역사서를 쓸 준비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때 ‘이릉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릉'은 당시 유명한 장군의 손자로 무술이 뛰어나고 군인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해 사마천은 이릉을 높게 평가했었는데요.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이릉이 포로로 잡히는 일이 일어났죠.

 

신하들은 앞다투어 이릉을 비난했지만 사마천은 이릉을 감싸고 이릉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흉노에게 사로잡힌 이릉이 흉노족과 손잡고 한나라를 치러 온다는 헛소문이 돕니다. 이에 이릉의 가족은 처형당하고 이릉을 감쌌던 사마천에게도 사형 선고가 내려졌어요.

 

그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자가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돈 50만 전을 내거나 궁형을 선택하는 것인데요. 궁형은 거세를 하는 형벌이라 살아남아도 뭇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신세가 되기에 쉽게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50만 전을 낼 형편도 못되었고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던 사마천은 죽어서는 안 될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아버지의 뒤를 어어 역사책을 쓰는 것이었지요. 결국 궁형을 받고 역사서에 자신의 한 맺힌 울분을 다 쏟아붓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마천을 보며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한 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사마천 앞에서는 친한 척해도 뒤돌아서면 남자 구실 못한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런 수치심과 수모를 견디고 130편에 달하는 역사서를 완성해낸 사마천은 후세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됐습니다.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지 않겠다고 했더라면 아마 오늘날 우리가 <사기>를 만날 수가 없었겠죠.  

 

<사기어록>을 쓰신 김원중 교수님은 자신이 곤궁해질수록 보다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치욕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곱씹으며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요.

사마천은 곤궁한 상황에서도 후세에 길이 남을 역사서를 남기겠다는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갔어요. 치욕스러운 상황에서도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딛고 일어설 용기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도를 걸어야만 연꽃처럼 고결한 뜻을 견지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사기어록 서문 中)

 

진흙에서 피는 연꽃처럼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성장한다는 것을, 높은 이상은 곤궁하고 치욕스러운 현실도 견디게 해준다는 것을 2000여 년 전의 사마천이 2000년 대를 사는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 줍니다. 동서양 고전 속의 철학가나 사상가도 귀인이 될 수 있다고 <해빙> 저자가 얘기를 했었는데요. 저는 새로운 귀인 한 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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