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한중록

꿈트리숲 2020. 6. 15. 06:00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달달 외운 지식은 시험에서 빛을 발하고 장렬히 전사했지만 굵직한 사건이나 몇몇 왕의 업적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 시대 왕들의 이야기는 책이나 영화 또는 드라마로 많이 접해서 그런 것 같아요.

 

영조, 정조 시대 때는 학문, 정치, 문화적으로 꽃을 피운 조선 후기라고 배웠는데요. 이는 망원경으로 조선을 비춰봤을 때 그럴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현미경으로 영조, 정조 시대를 자세히 살핀다면 암울하고 우울한 큰 사건 하나가 그 시대를 관통하고 있어요.

 

바로 사도세자의 죽음이지요. <한중록>의 혜경궁 홍씨는 영조의 며느리이자 사도세자의 아내로 또 정조의 어머니로 그 사건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혜경궁 홍씨가 자신의 가문에 대한 얘기며 궁궐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사도세자>의 죽음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대체 임오년의 일을 지금 사람들이 누가 나같이 알며, 또한 설움이 누가 나와 선왕(정조) 같을 것이며 경모궁(사도세자)께 대한 성정이 나 같은 이가 누가 또 있으리오. (198쪽)

 

이전까지는 국왕의 시선에서 사도제자의 죽음을 바라봤다면 <한중록>은 아내의 시선에서 남편의 죽음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시아버지는 어찌 그리 아들에게 매정한 아버지였을까, 왜 그리 엄하게 아들을 대했을까 싶은게 저도 전지적 아내 시점으로 <한중록>을 읽게 되더라고요.

 

영조께서는 똑똑하고 인자하시어 자상하고 민첩하신 성품이시고 경모궁은 말이 없고 행동이 날래지 못하여 민첩하지 못하셨다. 경모궁의 도량과 재능은 훌륭하시나 모든 일에 영조의 성품과는 달랐다. 보통 때 물으시는 말씀이라도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대답하시고, 당신의 소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하시어 즉시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늘 영조께서 갑갑해 하셨으니, 이 일도 화변의 큰 실마리가 되었다. (80~81쪽)

 

영조는 성군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업적이 많은 왕입니다. 그런 국왕이 되기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신을 다잡아 나갔는데요. 그에 반해 사도세자는 영조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앉아서 하는 글공부 보다는 무예에 더 관심이 많았고, 갑갑한 궁궐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사랑은 받고 싶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사람은 될 수 없었던 사도세자. 반면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영조. 부자 사이에는 결코 합쳐질 수 없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유능한 아버지의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는 아들의 심정은 모른 채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아들을 대신들 앞에서 꾸지람을 하고, 죄인을 심문하거나 역적을 사형시킬 때 불러서 참혹한 장면을 보게 하는 비정한 아버지가 영조 임금이었더군요.

 

또 화평옹주를 심하게 편애해서 남매간 부모의 사랑을 저울질하게 만들뿐더러 백성들이 굶주리거나 천재지변까지도 아들 탓을 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아들이 온전한 정신을 보존하는 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사도제자는 못 살겠다며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시도를 할 정도로 날로 마음의 병이 더해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의대증(옷 입기를 어려워하는 강박증)이 생기고 의복을 갖출 때 자신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상하게 한 내관들과 궁녀들을 무참히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영조께서는 이럴수록 가까이 두시고 친히 가르쳐서 서로 간의 인정과 도리가 친하게 될 방법은 생각지 않으신 채, 항상 멀리 두시고 동궁 스스로 잘하여 당신의 뜻에 맞으시길 기대하시니, 이럴 때 어찌 탈이 나지 않으리오. (81쪽)

 

상황이 이렇듯 험악하게 돌아간다면 심각성을 깨닫고 아비로서 아들 잘못 키운 점을 뉘우쳐 아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시도하는 게 옳은 길이라 생각이 드는데요. 영조는 한 아들의 아비보다 한 나라의 임금을 선택했습니다. 사도세자는 성군의 자리를 이를 재목이 안되겠다 판단하여 뒤주에 가둬 아들을 굶겨 죽입니다.

 

옛말에 ‘임금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몸이 단다’고 하셨습니다. 임금과 신하간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부자간의 천성은 이를 것이 없습니다. 동궁께서 사랑을 잃으셔서 전전하여 저러시니, 이런 곡절을 생각하시길 천만번 바라옵니다. (129쪽)

 

사도세자의 장인, 영의정 홍봉한이 영조에게 간언합니다. 아들이 저리된 데는 아비의 사랑이 부족해서 그렇다고요. 아들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임금의 눈높이에서 평범한 아버지의 눈높이로 아들을 봐주십사 간청합니다.

 

이 모든 걸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혜경궁 홍씨는 얼마나 서럽고 두렵고 괴로웠을까요. 애끊는 심정이 어떤 것임을 짐작하기도 버겁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성군으로도 괴물로도 만들 수 있음을 조선시대 역시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또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든 필부필부이든 간에 자녀에겐 그저 평범한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것도요.

 

한글로 씌여진 <한중록>은 궁중문학의 백미라고 꼽히는데요. 옮긴이는 고전문학은 오염되지 않은 지혜의 보고라고 말합니다. 궁중문학으로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는 어떤 지혜를 주는지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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