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리마커블 천로역정

꿈트리숲 2020. 7. 6. 06:00

<천로역정>, 책 제목만 많이 들어봤던 책인데요. 내용은 전혀 모르고 여러 도서관을 이 잡듯 수색해서 찾아냈습니다. 천로역정(天路歷程)은 일본어 번역 제목입니다. 원제는 <PILGRIM’S PROGRESS FROM THIS WORLD TO THAT WHICH IS TO COME>인데요. ‘이 세상에서 다가올 세상으로의 순례길’ 정도로 해석됩니다.

 

300여 년 전에 ‘존 번연’이라는 영국 설교사가 지은 종교 서적입니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된 책이라고 해요. 전 제목만 익숙한 책이었는데, 종교 관련 내용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데 실제 읽어보니 종교서적이라고 하더라도 비종교인인 저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천로역정 내용은 ‘존 번연’이 꾼 꿈 이야기에요. 꿈속에 나오는 주인공 크리스천은 작가 자신일 수도 있고, 무거운 짐을 진 채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일 수도 있겠더라고요.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천상의 도시에 이르는 여정 함께 떠나보실까요?

 

크리스천은 멸망의 도시에 사는 남자입니다. 등에 많은 짐을 메고 걷고 있습니다. 짐의 무게는 견디지 못할 만큼 무거워 허리를 구부려야만 할 정도였죠. 그래도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읽으며 짐을 내려놓을 방법을 찾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자신을 짓눌렀던 짐의 무게 때문에 쓰러질 정도지만 여전히 짐을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가족 누구도 크리스천의 짐을 풀 수가 없었어요. 모두들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는 크리스천.

 

어느 날 복음전도자를 만나고 희망을 얻게 됩니다. 짐을 내려놓을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거든요. 그의 말을 듣고 빛이 보이는 방향으로 무작정 나아가는 크리스천을 보고 이웃들은 비웃었어요. 크리스천의 두 친구 ‘고집불통’과 ‘변덕쟁이’가 따라붙으며 크리스천의 길을 막아섭니다.

 

미친 짓을 그만두라는 친구의 말에 크리스천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같이 떠나자고 말하죠. 안락한 삶은 지금 당장 편안함을 줄 수는 있지만 영원히 그런 삶을 보장할 수는 없을 거예요. 크리스천도 어쩌면 한 때 안락한 삶에 안주했다가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에 꽁꽁 묶여버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책은 은유 책이라고 해도 될 만큼 은유가 곳곳에 등장하는데요. 위에서 크리스천의 친구 이름만 봐도 그렇듯이 크리스천이 길을 가다 만나는 이들엔 선과 악이 있습니다. ‘아볼루온’, ‘절망의 거인’, ‘속이는 자’들처럼 길을 막는 이가 있다면 크리스천과 동행하며 도움을 주는 이도 있어요. ‘분별’, ‘경계’, ‘경험’, ‘지식’, 그리고 ‘믿음’과 ‘소망’ 등입니다.

 

여정 곳곳에 인간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등장해서 여정을 꼬이게 하거나 지체시키는데요. 그런 인물들은 이기심, 재물, 허영, 소심과 불신, 어수룩, 질투 등 우리 마음속에 이는 감정들입니다. 앞선 경험자들이 조심할 것과 경계할 것을 알려주지만 이내 ‘헛된 자만’으로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나 위기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절망의 거인을 만나 의심의 성에서 죽을 뻔한 크리스천과 소망은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이후엔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비석을 세워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을 알려주죠.

 

편하고 화려하게 보여 선택했던 길은 결국 나에게 절망과 의심, 이기심 등을 안겨줍니다. 편하고 화려하게 보이는 길은 우리를 쉽게 유혹해서 그 길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선택은 이내 후회를 몰고 오기도 합니다. 후회의 순간 땅을 치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뒤에 오는 이들을 돕는다면 그 후회는 깨우침이 되고 배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천상에 이르는 순례길이 종교를 떠나서 그리고 17세기가 아닌 21세기에는 어떤 길일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믿음과 소망의 도움으로 가지만 결국엔 자신이 사랑해야 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어요. 나만을 위한 길이 될 수도 있지만, 내일을 열어 다른 이에게 기적을 선물하는 길이 순례길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일 새로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일어날 거라고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60쪽)

 

매일 하는 일상을 내일도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것,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일어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적을 선물하는 사람들이 21세기 순례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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