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금오신화

꿈트리숲 2020. 7. 13. 06:00

 

 

김시습의 <금오신화> 아주 익숙한 제목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는 문학사적 가치 때문이라도 마르고 닳도록 외웠거든요. 그런데 정작 내용은 무엇인지, 제목에는 어떤 뜻이 있는지 책을 읽고서야 알았어요.

 

우리나라 고대부터 중세 근현대를 거쳐오면서 이름난 작품들은 죄다 제목만 꿰고 똑똑한척했던 제가 이제야 그 작품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나 완전 허술한 사람이었구나’ ‘정말 무지했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김시습이 30대에 경주의 금오산에 약 칠 년 동안 머물렀던 시기에 썼다고 추정되어 제목이 ‘금오신화’가 되었을거라고 하는군요. 김시습은 세종대왕 때 태어나서 문종, 단종, 세조, 성종까지 다섯 임금을 거쳐가는 동안 살았어요. 그러면 엄청 오래 살았을 것 같지만 정작 쉰아홉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시습의 이름이 지어진 일화가 특이한데요. 김시습은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떨쳐 세종대왕에게까지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생후 여덟 달 만에 글을 읽어 집안 어름이 논어 ‘학이시습지불역열호’의 일부를 따서 ‘시습’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는군요.

 

때때로 익힌다, 때에 맞춰 익힌다, 시간을 내어 익힌다 등 여러 뜻으로 해석되는 ‘시습’ 이름에 걸맞게 유명세를 탔지만 조선 초기 사회적 성공은 조정에 진출하는 것일텐데,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접하고 천하주유를 선택했거든요. 현실정치에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게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것 같아요. 이때부터 세상의 격식을 무시하고 기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아서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시습은 세상 여기저기를 유람하며 지혜를, 책으로는 지식을 차곡차곡 쌓았을거라 짐작되는데요. 그래서인지 그의 사상엔 유교와 불교 도교 어느 곳에도 귀속되지 않는 독특함이 있다고 합니다.

 

김시습의 개인적인 성취는 그의 뛰어난 천재성에 견주어 봤을때 좀 뒤처지지않나 싶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 <금오신화>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제약과 규칙에 얽매인 사람이라면 현실과 상상을 뒤섞은 소설을 쓰기가 어려울 것 같거든요.

 

금오신화에는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그리고 ‘용궁부연록’입니다. 모두 비현실적인 내용을 담았습니다. 귀신과 사랑하는 이야기 염라대왕이나 용왕을 만나는 이야기들로 꾸며졌거든요.

 

현실의 각기 다른 남자 주인공이 비현실 세계의 여자 귀신이나 선녀, 염라대왕 용왕 등을 만납니다. 만남을 통해 김시습은 현실 정치에 발붙일 수 없었던 자신을 돌아보려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현실이 녹록지 않으니 그저 비현실에 심취해서 판타지만을 꿈꾸었던 걸까요?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폭력으로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될 것이오. 백성들이 두려워서 따르는 것같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반역할 뜻을 품고 있어서 날이 가고 달이 가면 큰 재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오. 덕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되오. 하늘이 비록 거듭 말해 주지는 않아도 행사(行事)로 보여 주니, 처음부터 끝까지 상제의 명령은 지엄한 것이오. 대체로 나라라는 것은 백성의 나라요, 명이라는 것은 하늘의 명이오. 그런데 천명이 떠나가고 민심이 떠나가면 임금이 비록 제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떻게 가능하겠소? (102쪽)

 

<금오신화>의 다섯 편의 얘기 중 저승여행기인 ‘남염부주지’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저는 이 대목이 김시습이 현실 정치를 비판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봤어요. 조카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조카를 죽게 만든 세조를 꾸짖은 것이라 짐작합니다. 지금의 정치가들이 꼭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김시습은 현실 정치에 발을 떼고 있었지만 올바른 정치에 대한 마음은 비우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실의 실패는 영원한 실패일까? 이 물음에 김시습은 이런 답을 줍니다. ‘내가 나아가고자 한 길이 막혔다면 우회로를 찾아볼 것. 그 길에서 새로운 꿈과 재능을 만나게 될 것이니.’

 

천재는 천재로서의 꽃을 못 피운 대신에 영생의 꽃을 피웠습니다. 정치의 뜻은 이루지 못했으나 문학으로 영원히 후대의 가슴에 살아남을 꽃을 피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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