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호모쿵푸스

꿈트리숲 2018. 6. 11. 18:22

장막을 뛰어 넘어 앎과 삶이 일치하는 멋진 광야로 

호모쿵푸스/고미숙/북드라망

 

발트해 연안의 거대한 숲, 나무와 나무 사이로 붉은 장막들이 나부낀다. 몰이꾼들이 요란하게 나팔소리를 울리며 한 무리의 늑대를 붉은 장막 쪽으로 몰아붙인다. 빼곡히 늘어선 나무들과 울퉁불퉁한 바위, 급한 여울과 가시덤불 사이를 날렵하게 달리던 늑대들이 장막 앞에서 흠칫, 멈춰선다. 울타리도 아니고 철조망도 아니고, 그저 펄럭이는 장막일 뿐이다, 대체 왜? 결코 넘을 수 없는 '금지의 선'이라 스스로 간주해 버린 것이다. 머뭇거리는 사이, 몰이꾼들이 늑대들의 숨통을 끊어 버린다.

 

사람 같으면 나무 사이로 드리워진 장막쯤은 아주 쉽게 구별하겠죠? 저게 뭣이 어렵다고 구분을 못할까. . . 싶어요. 그래서 우리는 늑대보다 우월한 종족이구나 하고 스스로 만족합니다. 과연 우리는 늑대보다 우월할까요? 우리는 우리 앞에 알게 모르게 드리워진 장막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어요. 국가가, 사회가, 학교가 쳐놓은 장막에 수없이 걸려서 좌절하다가 이제는 아예 그 장막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공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해' 이런말 많이 들어보셨죠. 오랫동안 앉아서 머리에 지식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니까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몸은 쓰지 않고 오로지 머리로만(안구 운동이 필요하긴 해요.^^) 채워넣는 지식은 우리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고, 존재의 가치를 얼마나 올렸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에 고미숙 작가님은 이의 제기를 하세요. 공부는 쿵푸를 연마하듯 몸으로 단련하는 훈련이라고요. 참으로 멋드러진 말이에요. 공부가 쿵푸라니요. 그러고 보니 발음도 비슷하죠. 쿵푸의 한자 "功夫"를 우리말로 읽으면 공부(工夫)가 되니 호모쿵푸스가 왜 나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됩니다. 고전을 오랜동안 연마하신 분은 표현도 독특합니다. 교과서만 열심히 갈고닦고 실용서만 후벼판 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상이에요.ㅠㅠ

 

 

제가 고미숙 작가님을 알게 된건 4년 전쯤 백화점 문화센터 인문학 강좌에서 였어요. 12주동안 매주 다른 주제로 강사 열분정도 오셔서 강의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때 고미숙 강사님이 동의보감과 우리 몸에 대해서 강의를 하셨는데, 완전 매료되었죠. '어떻게 저렇게 박학다식 하지?', 또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하다' 등 작가님 주위로 아우라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작가님은 공부 공동체를 운영하신다고 감이당 얘기를 잠깐 해주셨죠. 감이당에 가서 인문학 공부를 꼭 해보리라 다짐했는데, 아직 실천은 하지 못했네요.

 

강의에서도, 작가님의 다른 책에서도 늘 강조하시는 것은 아는 것은 사는 것의 연장선이고, 사는 것은 아는 것의 합집합이 아닐까 싶어요. 앎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앎이 삶인지 삶이 앎인지 구분하지 않는 혼연일체의 경지입니다.

우리 앞에 쳐진 장막을 뛰어 넘어 앎과 삶이 일치하는 광야로 나갈려면 인문 고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작가님은 말씀하셔요.

 

p 40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공부가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라니. . . 지금의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이질적인 느낌이 드네요. 우리가 생각하는 공부는 자유는 잠시 접어두고 스스로를 독서실에 감금하는 일들이 아주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니까요. 그 공부라는 것이 눈앞의 실리만 추구하는 것이여서 그런가 봅니다. 공부는 그 자체로 존재의 기쁨이자 능동적 표현이라고 하였는데, 고통과 수동적 참여가 대부분인 학습과는 좀 구분을 해야겠어요.

 

장막을 뛰어넘는 호모쿵푸스는 어떤 공부 전략을 쓰는지 한번 볼까요.

고전을 공부한다. 스승이 친구가 되고, 친구가 스승이 되는 공부 공동체에 접속한다. 소리내어 고전을 암송한다. 배운 것을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해본다. 독서로 근기를 기르고 글쓰기로 앎과 삶을 일치시킨다.

 

모두가 몸을 쓰는 공부네요. 몸 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몸지능 뿐만이 아니라 머리 지능까지 높인다는 글을 어디서 본 것 같아요. 머리가 품고있는 앎이 우리 몸이 담고 있는 삶에서 떨어지지 않고 잘 녹아 어우러지게 하려면 앎과 삶이 일치하는 쿵푸의 세계로 나아가야 겠어요. 장막을 뛰어넘기도, 혹은 아예 장막을 걷어버리고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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