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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꿈트리숲 2020. 7. 10. 06:00

 

 

오랫동안 궁금해 오던 것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보고 해결되었습니다. 궁금증을 몇 년이나 품고 있었나 몰라요. 

 

전 아이를 키우면서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게 됐는데요.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해주고 싶은 영화들이 몇몇 있었는데 제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그러지를 못했었어요.

 

“엄마, 나오는 사람들이 다 서양 사람인데 말은 일본말을 하네?”

“그러게, 왜 그럴까...?”

“엄마, 저기서 왜 갑자기 비행기가 등장하지?”

“응? 그렇지. 좀 뜬금없네.”

“엄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는 전쟁이 많이 등장해.”

“그런 것 같네...”

 

아이의 물음이 곧 저의 궁금증이었는데요. 제가 애니메이션 덕후도 아니고,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의 광팬도 아니어서 적극적으로 그 물음을 해결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항상 마음엔 있었죠. '왜 그럴까?'

 

실제로 미야자키 감독은 여러 차례 웨일스와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왔다고 밝힌 바가 있다. 에리체의 기슭에 안개라도 끼면 애니메이션 속의 라퓨타와 영락없이 똑같은 것이다. (...)

 

그가 창립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지브리라는 말은 ‘사하라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란 뜻의 리비아어다. 똑같은 바람을 이탈리아어로는 시로코라 부른다. 지브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하라사막 일대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 정찰기들의 별명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 지브리라는 이름에는 그가 좋아하는 세 가지가 모두 들어있다. 바로 지중해와 비행기, 그리고 바람이다. (188쪽)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바람과 비행기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든가 <마녀배달부 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붉은 돼지> 그리고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에서 조차도 비행기와 바람, 푸른 바다가 등장했더랬지요. 지중해와 비행기, 바람은 감독에게 일종의 뮤즈 같은 것일거라고 감히 넘겨 짚어봅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났던 감독에게는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전쟁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참혹한지 영화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신의 메시지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담아서 전달하는 감독을 통해 일본 감독이지만 왜 영화의 배경은 유럽을 했는지, 왜 비행기가 많이 나오고 전쟁이 나왔는지 이제 알 것 같아요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놓친 것을 다시 기억하자는 메시지도 읽을 수 있겠습니다. 전쟁과 가장 대비가 잘 되도록 푸른 바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서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키곤 하는데요. 그걸 통해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유도장치 같아요.

 

김영하 작가는 <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아내와 함께했던 오래전 시칠리아 여행기를 풀어냈는데요. 그러면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기억하기를 권유합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296쪽)

 

지나간 여행을 글로 붙잡고 있는 작가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영화에서 붙잡고 있는 감독은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297쪽)

 

5년 넘게 호기심을 품고 있었더니 궁금증이 해결되는 날이 오네요. 나이 들면서 제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그걸 찾으면 저도 글로 그림으로 남겨놔야겠습니다. 저의 뮤즈는 뭘로 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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