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호두까기 인형

꿈트리숲 2020. 9. 21. 06:00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항상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인데요. 발레 음악을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하여 유명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겐 환상여행을, 어른에겐 동심을 선물해줘서 100년이 넘도록 그 인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레 공연에서 익숙하게 봤던 호두까기 인형 스토리는 원작은 호프만의 것이지만 발레 음악 대본으로는 알렉산더 뒤마가 쓴 <호두까기 인형 이야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발레 공연의 주인공 이름은 ‘클라라’이고요.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이름은 ‘마리’에요

 

저희 애가 여덟 살 때 이 책을 읽으며 왜 자기가 본 발레 공연의 주인공 이름과 다르냐며 물어봐서 제가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만도 저는 호두까기 인형은 ‘하나면 하나지 둘이 아니요’라고 생각했거든요.

 

검색을 총동원하여 아이에게 ‘원작과 발레 대본이 각각 있다’라고만 얘기해주고 저는 읽어보지를 않았죠. 최근에 고전 공부를 하면서 호프만의 <호두까기 인형>을 비로소 천천히 읽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전 마리가 생쥐 대왕으로부터 호두까기 인형을 구하고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보다 호두까기 인형이 어떻게 호두까기가 되었는지 알려주는 <호두까기 인형> 속의 ‘단단한 호두에 대한 동화’가 더 흥미로웠어요. 그 이야기 잠시 소개해 드릴게요.

 

옛날 어느 나라에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잔칫날 생쥐들이 나타나 음식을 먹어 치우자 왕은 쥐들을 다 없애버렸어요. 생쥐 여왕만 살아남아 왕에게 복수하는데요. 왕의 귀여운 공주에게 저주를 걸어 아주 못생기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공주에게 걸린 저주를 푸는 방법은 공주가 크라카툭 호두를 먹어야만 하는데요. 크라카툭 호두는 구하기도 어렵지만 워낙 단단하여 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왕은 공주의 마법을 푸는 젊은이에게 딸과 함께 왕국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한 청년이 크라카툭 호두를 깨서 공주에게 주고 공주는 저주에서 풀려나요. 청년은 뒤로 물러나다 생쥐 여왕을 밟아 죽게 만들고 생쥐 여왕이 죽기 직전 청년에게 저주를 겁니다.

 

공주의 흉측한 모습은 청년에게 옮겨간 듯 쪼그라진 몸통에 커다랗고 못생긴 머리를 가지고 입은 하품 하듯 크게 벌어진 모습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왕은 영웅이 된 젊은이를 자기 앞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어. 막상 못생긴 얼굴을 한 불행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오자, 공주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소리 질러 댔어.

‘꼴도 보기 싫은 이 호두까기를 어서 밖으로 내보내요. 어서!’

의전 대장은 곧바로 젊은이의 작은 어깨를 움켜잡고는 문밖으로 내던졌어. 왕은 한낱 호두까기 따위를 왕의 사위로 앉히려고 일을 꾸몄다며 불같이 화를 냈지. 103쪽

 

호두를 까겠다고 처음 궁으로 왔던 청년을 보고 공주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부디 호두를 까서 내 남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고요. 그런데 호두를 까고 나니 청년의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호두까기가 눈앞에 딱! 공주의 마음이 바로 돌변합니다. 왕 역시 너무나 간절할 때는 딸은 물론 자신의 왕국까지 다 물려주겠다며 선포했는데, 막상 물려주려니 아까웠던 걸까요? 아니면 청년의 모습이 너무 못생겨져서 마음이 변한 걸까요?

 

베푼 은혜는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고

받은 은혜는 돌에 새긴다.

 

어느 책에서 봤던 글귀인데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한지 종이 뒤집듯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기에 이런 경구가 생겨난 것이겠죠. 뒷간 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도 하잖아요. 혹시나 저도 타인에게 한 약속을 쉽게 뒤집은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내가 정말 필요할 때는 절실히 타인의 도움을 원하다가 도움받고는 그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산 적은 없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하는 동화입니다.

 

어른이 쓰는 동화. 어른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 모순을 다 겪어봤기에 동화에 담아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것이겠지요. 책을 통해 알게 되는 어른들의 모순을 아이들이 겪지 않게 하려면 어른인 우리가 먼저 본을 보여야겠다 싶습니다. 지극히 서양적인 이야기가 사실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동양적 교훈을 담고 있어서 앞으로 100년 뒤에도 <호두까기 인형>은 계속 사랑받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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