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꿈트리숲 2020. 9. 14. 06:00

 

 

두 달 전에 필립 체스터필드의 <아버지의 말>을 읽고 후기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가 생각났었어요. 같은 시기 영국의 아버지와 조선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당부를 했을까,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비교해보고 싶었습니다.

 

몇 년씩 간격을 두고 읽었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다시 읽는 마음으로 다산의 유산을 정리해봅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 임금 때 실학자로서 승승장구하다가 정조 사후 신유박해로 귀양을 갑니다. 귀양 생활은 무려 18년간이나 이어졌는데요. 긴 세월을 원망하며 보낸 것이 아니라 독서를 하며 집필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평생 499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저술했는데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집필한 거라고 하니 열정과 노력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네요.

 

유배지에서 오로지 글로만 만날 수 있었던 자식들에게 아비는 어떤 편지를 썼을까요? 절절함과 간절함을 담아 자식에게 평생 간직되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다산 선생의 유산 몇 가지 소개합니다.

 

참다운 공부길 – 오직 독서만이 살아나갈 길이다.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36쪽

 

귀양살이하는 아비 때문에 집안이 망했으니 이제 과거 시험 걱정일랑 접고 참다운 독서를 하라고 말합니다. 과거 시험을 보려면 정해진 과목이 있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공부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이제 벼슬길이 막혔으니 새로운 학문, 오래되어 잊힌 학문 가릴 것 없이 다 해볼 수 있으니 오히려 기회라고 말하는 아버지. 생각이 유연한 아버지이셔요.

 

올바른 처신에 대하여 –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나는 저번에 이리저리해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59~61쪽

 

도움을 줄 때는 뭔가를 바라고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죠. 도움은 나에게서 나가 꼭 필요한 이에게 사용되고 소멸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자는 도움을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저는 강물에 흘려보내듯, 바람에 날려보내듯 생각합니다.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 된다 – 용기와 노력

무릇 한가지 하고픈 일이 있다면 목표되는 사람을 한 명 정해놓고 그 사람의 수준에 오르도록 노력하면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은 모두 용기라는 덕목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다. 186쪽

 

나의 꿈에 가장 근접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멋진 사람을 실제 인물이든 책 속의 인물이든 정하고 비슷해지려 노력하는 것, 용기였군요. 롤모델 따라서 읽고 쓰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비슷해지는 때가 오겠지요.

 

다산은 책 읽고 글 쓰는 것 외에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식들에게 금언을 남겼습니다.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 재물을 오래 보존하는 길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질 수밖에 없지만,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

무릇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시혜(施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 시혜해버리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이 없고 소나 말로 운반하는 수고도 없다. 또한 자기가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년 뒤까지 남길 수도 있다. 167쪽

 

돈으로 물건을 소지 말고 경험에 투자하라는 요즘의 말과 결을 같이 하는 내용이군요. 물질은 닳아 없어지기도 하지만 가지면 가질수록 그 마음이 더 헛헛해집니다. 반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없어질 염려가 없고 누리면 누릴수록 마음이 풍성해지는 것, 바로 경험이죠. 요즘에서야 우리가 ‘그렇구나’하고 느끼는 것, 앞서간 학자는 이미 200년 전에 그 지혜를 알고 계셨네요.

 

유배지에 있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길 유산이 없어 근(勤), 검(儉) 두 글자를 유산으로 물려줬습니다. ‘부지런하고 검소하라’는 정신적 부적이 200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그 울림이 전해집니다. 근, 검 두 글자만 남긴다고 하셨지만, 선생이 남긴 모든 저서와 말씀은 몇백 년이 흘러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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