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미니멀

전기밥솥 없이 살기 2탄 - 입맛은 정직하다

꿈트리숲 2020. 10. 6. 06:00

전기밥솥이 빠진 자리가 이리도 넓었다니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주부 경력이 웬만큼 쌓여서일까? 매 끼니 밥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예전엔 압력밥솥에 밥을 하더라도 보온은 전기밥솥에 맡겼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 해두고 보온 밥을 먹었다. 그러나 이젠 아무리 좋은 성능으로 보온이 된다고 해도 갓 지은 밥맛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정직한 입맛이 알아버렸다.

그렇기에 가족을 위해서라기보다 정직한 내 입맛에 충실하기 위해 적어도 하루 두 번은 밥을 한다.

 

갓 지은 밥맛 그것은 오 마이 GOD

저녁 6시 이전에 식사 준비하러 움직이면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버티던 내가 쌀을 미리 불리려고 5시 30분에 잠깐 움직여서 5분을 투자한다. 이 투자가 밥맛을 많이 좌우하기에. 밥맛은 아니 입맛은 사람을 꿈틀하게 만든다.

 

전기밥솥 없이 살기 첫 번째 글에서 많은 분이 압력밥솥을 사용하고 계신다고 댓글을 써주셨다. 환경을 위해서 혹은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 나 혼자서 큰 결심을 한 줄 알았는데, 이미 그런 삶을 살고 계셨다니 앞으로 다시 전기밥솥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압력밥솥은 꼼꼼한 검색도 귀찮고 또 얼마나 쓸지 몰라 적당한 가격에 막 사용해도 아쉽지 않을 제품으로 골랐다. 설명서 훑고 밥하기 돌입. 예전에는 손등 계량법으로 밥물을 맞췄다. 다른 건 다 계량컵이나 계량스푼 사용하고 하다못해 밥숟가락 계량이라도 해서 음식을 만들었는데 밥할 때는 손등을 썼다.

 

전기밥솥이 좋았던 건 계량컵이 있어서 2컵, 3컵 계량컵으로 붓고, 밥솥에 그어진 눈금 선에 맞추어 물을 부으면 딱 알맞게 밥이 된다는 것이다. 압력솥은 그런 계량컵이 없어서 눈대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설명서에 쌀을 1인분 기준 150g 부으면 물은 180mL를 부으라고 되어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전자저울. 우리 집 전자저울 사용처는 아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아이와 과자 나눠 먹을 때 정확하게 이등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저울이다.

 

혹시나 해서 전기밥솥 계량컵을 저울에 올리고 0점 세팅하고 쌀을 부어봤다. 한 컵 가득 채우니 신기하게도 딱 150g이 나왔다. 어머!! 계량이 완전 쉽네. 그러면 솥 안에 그어진 선에 맞추어 물을 부으면 되겠다 싶어 바로 밥을 해봤다.

 

밥은 잘 되었는데, 밥의 되직한 정도가 2% 부족했다. 전기밥솥과는 조금 차이가 있나 보다. 항상 일정한 맛을 내려면 계량이 필수. 정확한 밥물의 양을 찾아야만 했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 솥 밥을 할 때 쌀양과 물양을 같게 하라고 했던 것 같다. 혹시나 해 쌀 150g 측정했던 컵에 한 컵 가득 물을 받아 200mL 계량컵에 부었더니 조금 모자란다. 찾았다. 너(계량컵)란 녀석 150g도 되고 180mL도 되는 거였구나! 계량 걱정 끝. 밥솥 청소도 필요 없고 전기도 아끼고 1석 2조. 예전에도 이렇게 간편했었던가.

 

이제 보온만 해결하면 밥 문제는 해결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밥 보관 용기 소환. 새로 지은 따끈따끈한 밥을 용기에 담고 한 김 빼서 냉장실이나 냉동실에 넣어둔다. 먹을 때 전자레인지에 2~3분 데우면 신기하게도 갓 지은 밥처럼 되었다. 문제는 전자파가 찜찜해서 전자레인지 사용이 좀 꺼려진다는 것. 그리고 한꺼번에 세 식구 분량을 데우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과 데운 밥을 먹다 보면 밥 가장자리가 빨리 마른다는 문제들이 발생했다.

 

옛날에 엄마는 밥을 방구들 아랫목에 고이 모셔두곤 했는데, 아파트에선 아랫목이 어디메요? 엄마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전자레인지가 찜찜해서 찜솥에 쪄보기도 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밥 보관 용기에 담요를 덮었다가 도시락 가방에 넣어봤다가 하는 등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보온이 오래가지 못했다.

 

아! 보온도시락에 넣어보면 어떨까? 보온도시락 구하러 온 마트를 다 뒤졌다. 집에서 보온 용도로만 쓸 건데도 디자인이 신경 쓰였다. 나란 사람 쓸데없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타입. 결국, 온라인에서 찾았다.

 

도시락을 받자마자 보온테스트. 아침에 한 밥이 점심때까지 따끈따끈했다. 저녁까지는 한계점을 넘었는지 버티지 못했다. 6시간 보온은 합격점이나 갓 지은 밥처럼 고슬고슬하지는 않았다.

 

갓 지은 밥은 갓 지었을 때만 가능하기에 그런 말이 생겼으리라. 추석 연휴 내내 정직한 내 입맛을 맞추느라 하루 두 끼씩 밥을 했다. 밥이 맛있으니 힘든 줄 모르고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더는 밥 못하겠어’라며 파업하지 않게 획기적인 보온 방법을 찾으면 좋겠다.

 

혹시 유레카를 외칠 만한 밥 보온방법 알고 계시면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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