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꽃들에게 희망을 - 2020

꿈트리숲 2020. 10. 12. 06:00

매주 한 번씩 하는 인문고전 수업. 아이들과 인문고전을 어떻게 읽을까를 공부하면서 초등 인문고전부터 읽고 있습니다. 아이들 책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대충 읽고 넘겼거나 아니면 다 안다고 그냥 지나쳤던 책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전혀 다른 의미로 새겨지기도 하고요. 같은 책이어도 아무 생각 없이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책이 되기도 해요.

 

2년 전 블로그 시작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읽고 후기를 남겼었어요. 그때도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했는데요. 2년이 훌쩍 지나고서는 그때 그 감동을 잊고 있었습니다.

 

몇 주 전 수업 시간에 <꽃들에게 희망을>을 재차 읽게 됐어요. 읽으면서 예전에 나는 어떤 깨달음을 느꼈었던가 해서 제가 쓴 글을 찾아봤습니다. 혹시 그럴 때 있으신가요? 오래전 자신이 써놓은 글을 다시 읽을 때요. 블로그 기록해두니 옛날 글 찾아 읽을 때가 종종 있는데요. 기분이 새롭습니다. ‘내가 이런 글도? (자기도취) 내지는 난 그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됩니다. 아랫글은 <꽃들에게 희망을> 2018년 5월에 쓴 후기인데요. 약간 수정하면서 시간의 먼지를 털고 2020년의 공기를 좀 쐬어주겠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제목을 보고 꽃들은 어떤 희망을 품을까…. 생각해봤어요. 꽃들의 번영, 온 세상이 꽃천지가 되는 것이 꽃들의 단 한 가지 소망이 아닐까 싶어요. 발이 없어서 움직일 수 없는 꽃들의 소망을 들어 주려면 매파가 필요해요. 매파는 바로 나비인데요. 이 책은 나비에 관한 책입니다. 더 자세히는 나비인 줄 모르고 살던 애벌레들의 희망, 용기, 도전,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애벌레들이 각자의 존재가치를 깨닫고 나비로 다시 태어나 세상 모든 꽃들에 희망을 전하는 감동 이야기. 아이 동화책이지만, 어른들도 꼭 보셨으면 하는 감동 고전입니다.

 

애벌레 기둥 속으로 파고 들어가 기어 올라가는 호랑 애벌레를 보며 바로 우리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애벌레 기둥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애벌레들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턱대고 다른 애벌레가 하니까 다 같이 올라갑니다. 너무 많이 모여든 탓에 위로 올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애벌레를 밟고 올라가야만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밟히니까요. 여기서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모두가 가는 곳을 향해 나도 가고 있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에 그렇습니다. 또 남들따라만 가면 되니까 오히려 생각이 방해될 수도 있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꼭대기에는 막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허탈감이 몰려오지만, 남들에게 뭔가 대단한 것처럼 보여야 하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인간 세상하고 똑같았어요.

 

“조용히 해, 이 바보야! 밑에 있는 놈들이 다 듣겠어.

우린 지금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 하는 곳에 와 있단 말이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94쪽

 

바로 우리 모습 같지 않은가요? 모두가 상위권 대학 혹은 대기업 같은 한 곳만 바라보고 달리면서 앞길에 방해가 되는 건 다 떨쳐냅니다. 때론 친구도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일 뿐이죠. 이때 생각은 사치일 뿐이에요. 그런데 최고 정점에 도달하면 과연 무얼 위해 달려왔는지, 행복한지 의문이 들어요. 그렇지만 아직 그 위치까지 올라오지 못한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기에 그냥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떻게 따낸 기득권인데,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절대 놓지 않으리’ 하면서요.

 

애벌레 기둥 속에 있을 때는 세상 모두가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요. 그걸 알려면 있는 곳에서 나와야 합니다. 기둥에서 나오면 세상에 내가 오르려던 기둥과 같은 것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죠. 혹은 세상에는 기둥을 오르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애벌레에겐 자신 안에 있는 더 나은 삶, 바로 나비의 삶이 들어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요. 호랑 애벌레는 이전에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나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또 바로 나비가 되지 않고,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살아있는 애벌레가 죽음 같은 시간을 쉽게 견딜 수 있을까요?

 

“죽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참모습’은 여전히 살아있단다.

삶의 모습은 바뀌지만, 목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야.” 75쪽

 

겉모습은 죽은 듯이 보여도 알맹이는 여전히 숨 쉬고 있다는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했어요. 나비가 되기 위해선 애벌레의 삶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마치 죽은 목숨처럼 보이는 시간도 견딜 만큼, 간절함이 필요한 것이더라고요.

 

저의 아이가 저에겐 꽃입니다. 그 꽃에 희망을 주고 싶어요.

내 안에 들어 있는 더 나은 삶을 깨닫고 진정한 혁명을 통해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능히 번데기 시간을 뚫어내기 위해 포기할 건 포기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건 지키면서 말이지요.

 

세상이 꽃으로 가득 차려면 수많은 나비가 필요합니다. -트리나 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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