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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꿈트리숲 2018. 9. 13. 08:14

문화를 바라보는 색안경, 쓰고계십니까?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한민/부키

제가 어릴 때 즐겨 보던 TV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한국 드라마는 뭘 봤는지 기억이 없는데, 매주 방송하던 미국 프로그램은 생생하게 기억나요. 브이, 전격제트작전, 맥가이버, 육백만불의 사나이 등. 지금은 미드라고 하지만 그때는 그냥 외화라고 통칭했어요.

그 외화들의 스토리도 재밌었지만 외국인들, 엄밀히 말하면 미국 사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선망을 심어줘서 빼먹지 않고 계속 봤던 것 같아요. 미국은 잘 살고, 미국 사람은 똑똑하고 예쁘고 멋있고, 그리고 다 착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그때부터 가졌나봐요. 그 이후에도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미국 영화에 편중되어서 그들이 바라는 사상을 제 머리에 잘 이식했어요. 제 의식의 댐에 세계 평화는 미국이 책임진다, 그들이 언제든 약자를 보호하고 악을 물리친다는 생각이 가득했었던 걸 보면 그래요. 대학생이 되고 선배들이 알려주는 미국은 제가 생각하는 미국과 완전 다른 나라였어요. 단단하던 제 댐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세계의 영웅이라는 생각을 더 확실히 심어줬던 영화가 있어요. 바로 슈퍼맨이죠. 슈퍼맨은 이제 방송사 프로그램 이름으로도 쓰일 만큼 우리에겐 아주 흔한 이름이 되었어요. 능력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거의 슈퍼맨을 떠올릴만큼 대명사가 된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유독 미국 영화에만 영웅이 많은 것 같아요. 진짜 생각을 해보니 이슬람권에서 혹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권에서 나오는 영웅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아예 영화 조차도 본 기억이 없네요. 좀 과장하면 지구는 태양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으로 돈다고 해도 믿겠어요.ㅎㅎ  노래는 팝송만 듣고, 영화는 미국 영화만 보고, 외국인은 다 금발에 하얀피부라는 편견을 갖게 세뇌가 된거죠.

p 188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또는 충족될 수 없을 때-, 개인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시키지요. 이 방어기제 중에 '투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중략) 이런 관점에서 1938년 미국의 슈퍼맨은 경제공황에 시달리던 대다수 미국인들의 욕망이 표출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슈퍼맨이라는 가상의 영웅의 활약을 통해 억눌렸던 욕구를 해소한 것입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던 슈퍼맨이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지나오면서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미국의 대표 이미지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시작은 욕구 해소 차원이었지만 점차 미국인들은 슈퍼맨에게 세계 속 미국의 위상을 더 투사하게 되나봐요. 세계를 구하는 영웅은 미국, 미국인이다 하고 말이죠.

이 책의 저자인 한민 문화심리학자는 문화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하십니다. 각 문화는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에 우열을 나눌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미국이 여러 영웅을 대량 생산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 드라마로 영화로 뿌리는 것은 그들의 문화가 세련되고 좋은 문화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도울 수도 있고, 미국 아닌 다른 나라와 상부상조할 수 있는데, 늘 필수옵션에는 미국이 있어요. 미국이 통화와 군사력에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오래전부터 각인된, 영웅=슈퍼맨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핵심적인 것까지 인간 삶 전반에 영향을 준다고 하는 문화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세대를 거듭하면서 학습되어져 내려옵니다. 슈퍼맨도 어쩌면 우리에게 학습된 이미지일 수 있어요. 익숙한 것은 옳고 그렇지 못한 것은 틀리다는 편견과 함께요. 이제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발견인지, 아님 방문인지 그들이 건네준 색안경을 벗고 바라봐야 할 때가 됐어요.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 는 이유가 있어서 가긴 했지만 우리 나라에도 베트남에도,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영웅입니다. 비록 복장이 빨간 망토에 팬티를 밖에 입은 모습은 아닐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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