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어디서 살 것인가

꿈트리숲 2018. 10. 11. 08:16

나와 건축의 이야기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을유문화사

지난 주 유현준 교수님 강의 후기를 포스팅 했었는데, 그때 강의 제목도 어디서 살 것인가였죠. 전작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도시를 바라보는 작가의 인문학적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 <어디서 살 것인가>는 건축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인문학이라는 것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사람 사는 얘기,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인간을 이해할려는 노력이 인문학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측면에서 유현준 교수의 두 책은 도시와 건축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듯 싶어요. 더불어 우리가 좀 더 좋은 곳에서 좀 더 좋은 공유와 점유의 공간을 더 많이 누리도록 돕고 싶은 작가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현준 작가의 강의 후기는 아래 클릭하셔요.^^

2018/10/05 - [Book Tree/강의] - 유현준 교수 강의 후기

 

우리는 대부분이 도시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도시에 살면서 건축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요. 집에 있어도 학교나 회사에 가서도, 길을 걸어도 여행을 가더라도 건축과는 별개로 지낼 수가 없어요. 그만큼 건축은 우리와 오래 세월을 함께 해 온, 인간과 같이 공진화해온 결과물이라 그런 듯 싶어요.

우리가 학창 시절 역사를 배울 때 구석기 시대는 동굴 생활을 하며 수렵, 채집을 했고 신석기 시대가 되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배웠어요. 그런데 새로운 유적이 하나 발견되면서 그 순서가 바뀌게 된다는군요. 바로 1994년 터키에서 발견된 '괴베클리 테페' 라는 건축물 덕분에요.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보니 기원전 1만년 ~ 8천년경 만들어진 건물이래요. 농사는 기원전 7천년 경 시작되었구요. 먹고 사는 농사 보다도 건축이 먼저였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향후에 또 다른 건축물이 발견될지는 모르지만 현재로선 괴베클리 테페가 구석기 인류가 동굴 밖으로 나오면서 짓기 시작한 최초의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

p 8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으로 시각이 바뀌었다. 즉 인간이 사후세계를 믿기 시작하자 의식을 치르기 위해 신전을 건축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농업이 시작된 것이다. (중략) 건축은 인류 문명의 효시인 농업보다도 먼저 시작된 인간을 인간 되게 만든 본능적 행위다.

괴베클리 테페는 온전히 인간의 노동력만으로 15톤 가량 되는 돌들을 운반해서 지어진 거라고 합니다. 그러니 건축물을 짓기 위해 사람이 모여야 하고 또 한 곳에서 오랜 시간 보내야 하니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필요했겠죠. 농업으로 건축이 시작된 게 아니라, 건축을 하기 위해 농업을 시작한 것이라는 작가의 설명에 수긍이 갑니다.

문자가 남아 있는 역사 시대는 인류 문명사의 오류가 그리 많지 않지만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는 대부분 우리의 상상력이다 보니 역사가 뒤바뀌는 일도 생기네요. 발견된 유물과 유적만으로 이런 삶을 살았을 것이다 추측하고 때로는 소설도 쓰지만 앞으로 또 어떤 유물과 유적이 나와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설을 바꿀지 궁금해집니다. 

추측하거나 상상을 해서라도 인류 고대사를 밝히는 이유는 건축이 인간을 투영해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 거울을 통해 과거를 비추고 현재를 살게하고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게 말이죠. 오늘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지구로 떨어진 생명체가 아니기에, 아직도 우리 몸에는 몇 만년전의 그들의 DNA가 살고 있기에 그들이 남긴 건축물을 이해하면 현대를 사는 우리를 잘 이해할 수 있겠죠. 고된 노동이었겠지만 옛조상의 힘씀 덕분에 오늘날 우리가 멋진 건물들을 향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괴베클리 테페 유적이 만년을 훌쩍 뛰어 넘어 지금의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전 믿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과 소통하고 다른 건축물들과 대화하면서 진화하기 위한 노력 또한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p 148 이와 같은 의인화된 시선으로 건축을 바라보면 무기물 덩어리에 불과한 건축물도 마치 의식을 가지고 본이인 철거되지 않고 더 오래 살아남기 위해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에 맞춰 모습을 바꾸며 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은 건축물을 만들고 건축물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인간과 함께 이 땅을 공유하고 점유해온 건축물들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집니다. 만년 전의 사람은 가고 없지만 그들의 애씀의 결과물은 고스란히 남아서 미래를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 우리가 지은 집은 또 만년 후의 후손에게는 어떤 메세지를 전해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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