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최고의 선택

꿈트리숲 2018. 12. 11. 06:41

자신을 부정하는 용기

최고의 선택/김형철/리더스북

서점 쇼핑 중 책 제목에 이끌려 그 자리에서 보다가 얼른 집어온 책입니다. 재밌어서요. 현대의 철학자가 옛날 철학자의 이론을 가지고 오늘날  어떻게 살아갈지 알려주는 내용인데요. 유명한 철학자 22명이 등장해요. 각 철학자의 대표 이론으로 우리가 처한 여러 문제를 짚어주고 어떻게 생각하면 될지를 알려줍니다. 그렇다고 해답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아요.

한 챕터가 끝날 때 마다 딜레마에 빠지는 질문들이 한 가지씩 있는데요. 쉽게 답을 내기가 어려운 질문들입니다. 책의 저자 김형철 교수님은 철학자에게 지혜를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질문을 질문하는 사람, 그 사람이 최고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말이죠.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한 가지만 소개 하려니 아쉽네요. 다음에 한 번 더 소개할께요.

오늘은 그 중 데카르트 부분을 읽으며 생각난 저의 경험을 나눌까 합니다. 눈에 익숙한 용어가 나오더라구요. 바로 데블스 애드버킷(devil's advocate)인데요. 동명의 영화가 있었죠. 97년에 개봉한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에요. 대충 기억나는 것은 나쁜 일인줄 알면서도 악의 측에서 변호를 하는 주인공 얘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데블스 애드버킷을 악마의 변호인 정도로 알고 있었어요.

p 196 중세 시대에는 성인으로 추대하는 심사를 할 때 추천받은 사람이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음을 교회에 증명해야 했습니다. 교황청에서는 실제로 신과 악마에게 성인이 될 만한지 물어 볼 수 없으니, 신부들에게 찬반 토론을 벌이게 합니다. 찬성하는 쪽은 신의 대변자, 반대하는 쪽은 악마의 대변자가 되어 논쟁을 벌인 거지요.

그런데 반대하는 악마의 대변자 역시 교황청에서 임명되는 신부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진심과 무관하게 반대 의견을 펼쳐야 했죠. 이런 사람, 즉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을 데블스 애드버킷이라 불렀다는군요. 전 그냥 영화의 제목인줄만 알았는데, 이런 역사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데블스 애드버킷이 요즘은 모두가 찬성할 때 일부러 반대 의견을 제시해 토론을 활성화시키고 다른 대안을 찾아보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대요. 이 글을 읽으니까 작년에 제 딸과 했던 찬반토론이 생각났어요. 초등 6학년때 학교에서 토론을 배우고 있을 때였어요. 어느 날 부턴가 빈백을 사자고 계속 조르더라구요. 저는 꼭 필요한 물건 아니면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할 때 1주일 생각해보고 얘기하자 또는 한달 후에도 그 물건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으면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하는 식으로 계속 미루거든요. 사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은 이미 집에 다 갖춰져있고, 혹여 꼭 필요한 물건이라도 집에 들인다면 기존에 비슷한 물건은 정리하는 편이라 쉽게 새 물건을 사지 않으려 합니다.

아이가 사자고 한 건 빈백이었는데요. 소파 처럼 쓸 수도 있고 1인 의자로도 쓸 수 있는 물건이에요. 이미 소파가 있으니 저희 집엔 딱히 없어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거죠. 한달 여를 끌면서 관심이 점점 희미해지는 어느 날 찜질방에서 빈백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됐어요. 빈백 욕구에 다시 불이 붙어서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죠. 어쩌지 하다가 학교에서 토론 배운다는 것이 생각나서 찬반 토론을 제안했어요. 단 조건은 빈백을 사고 싶어하는 딸은 빈백 반대 편, 저는 빈백 찬성 편을 맡는 거에요. 아이의 저항이 극렬했지만 토론에서 이기는 사람의 뜻대로 한다는 조항을 붙였더니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어요.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죠. 

전 별다른 준비를 안하고 아이 하는 거에 맞춰서 적당히 반박만 해야지 싶었는데, 왠걸요. 아이는 완전 열심히 준비를 하더라구요. 매일 같이 진행 상황을 저에게 알리며 은근 압박을 하는 겁니다. 아이는 아빠와 한 팀을 먹고, 저는 그때 같이 살던 조카와 한 팀을 이루었어요. 팀명도 정하고 결전의 날을 향해 D-day 카운트도 하고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결과는 딸의 승!!! 저도 나름 빈백 홈페이지 참고해서 장점들 많이 수집하고 했는데,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토론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딸의 열정에는 당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주문했지요.ㅎㅎ 찬반 토론에서 딸에게 반대 편을 맡으라고 한 건, 사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좀 헤아려달라는 뜻이었는데, 제가 토론 준비하면서 딸의 마음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찬반이 치열할 때 이 순간에야말로 악마의 변호인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p 200 자신의 입장을 떠나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부정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전체를 보는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찬반이 치열할 때, 각자 자기 주장만 내세울 때 악마의 변호인이 되어 자신을 부정하는 용기를 내 보는 것. 전체를 보는 지혜도 얻지만 상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더라구요.

빈백을 받고 때마침 선물 책을 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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