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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꿈트리숲 2019. 1. 24. 06:53

의학 세계사는 나의 삶과 어떤 관계가있나

 

세계사를 의학의 관점에서 풀어주는 책인가 싶어 읽게 된 책인데요. 기생충학 박사님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책을 넘겼더니 의학의 역사가 쭉 나오는 겁니다. 딱히 의학의 역사에는 관심이 없는데, 덮을까 하다 한 챕터만 더 읽고 덮자 하는게 끝까지 다 읽게 되었네요. 저자는 의학의 역사라하면 저 처럼 지루해하거나 따분해하는 사람들이 많을거라 짐작하셨나봐요. 그래서 의학사를 풀어가는 아주 기발한 방법을 쓰셔서 호기심을 놓치지 않게 만들어요. 서민 교수님의 필살기인 스토리로 의학세계사를 여행시켜 줍니다. 그 스토리의 주인공부터 한번 만나볼까요?

1991년 알프스 산 얼음 속에서 엎드려 있던 시체가 독일인 부부에 의해 발견 되는데요. 실종된 사람도 아니고 시체에 도끼며 화살 같은 것이 매달려 있어 학자들이 연구에 들어갑니다. 냉동된 덕분에 시체는 잘 보존되어 있었대요. 연구 결과 그는 5300년 전에 죽은 신석기시대 사람이었다는거죠. 발견된 계곡이 외치계곡이어서 그의 이름을 '외치'라고 한답니다. 현재 외치는 이탈리아 볼차노라는 도시에 전시되어 있대요. 그 지역 가장 큰 관광 수입원으로 활약하고 있다는군요.

엑스레이와 CT 등으로 진료해본 결과 외치는 관절염도 있고 어금니도 4개가 빠져 있고, 갈비뼈도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등 살아 생전 엄청난 고통을 참아야만 했을 것 같아요. 외치에게는 또 다른 병이 있었는데요. 심장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이에요. 5300년 전 죽은 사람을 현대의 의학과 과학으로 앓았던 병까지 밝혀 내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고 외치의 몸에 여기저기 문신의 흔적이 다수 있었어요. 외치 몸의 손상 부위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그 당시 치료의 목적으로 문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군요.

의술이라고 감히 부르기에도 민망하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아프면 문신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나봐요. 그러니 당연히 심장병은 불치병이였겠죠. 이유 없이 죽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살았기에 더 나은 치료법을 찾을 생각조차 못했을 시대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라도 오늘 하루 무사히를 기원했을테니까요. 서민 교수님은 얼음계곡에 갇혀있던 외치를 소환해서 심장병을 치료해주겠노라 약속하고 의학 세계사 여행을 보냅니다. 그래서 외치가 살던 시대로부터 미래로의 여행이 시작된거에요. 저도 외치가 언제쯤 심장을 고치는지 그것따라 가다보니 끝까지 책을 읽게 되었네요.

지금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하는 문신이 한때는 치료의 목적이였다니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라도해서 고통을 잊고 싶었던 걸까요? 고대인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제가 현재 2019년을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책을 보면서 현재에 살고 있는 것이 또한번 감사하게 생각된 부분이 있는데요. 그건 바로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이 나오는 대목에 그리 느꼈어요.

제가 임신했을 때 입덧이 엄청 심했었어요. 임신 2개월때 부터 6~7개월까지 거의 먹지를 못했거든요. 먹으면 거의 다 토해서 직장도 그만두고 링거 투혼하며 누워만 지냈는데요. 옛날의 임신부들도 입덧이 고역이기는 마찬가지였겠죠. 1950년대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이 출시됩니다. 원래는 진정제, 수면제로 만들어진 약인데 입덧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입소문이 나서 임신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대요. 그런데 이 약을 복용한 산모에게서 팔다리가 유난히 짧은 기형아가 태어나는거에요. 처음에는 탈리도마이드 복용과 연관을 짓지 못했지만 산부인과 의사들의 관심과 관찰로 연관성을 밝혀내게 돼요. 이미 세계 46개국에서 1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난 이후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 미국에서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p 243 이는 전적으로 프랜시스 켈시라는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 심사관의 공로였다. 이 약이 미국에 상륙했을 때는 이미 다른 나라들에서 판매되고 있던 터라, 금방 승인이 떨어질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켈시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 당시엔 안전성 검사를 위해 쥐를 갖고 실험했는데, 탈리도마이드는 임산부에게 쓰는 약이었음에도 임신한 쥐를 가지고 테스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약의 제조사는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켈시를 압박했지만 끝내 켈시는 승인해주지 않았어요. 덕분에 많은 산모와 아이를 구할 수 있었겠죠. 그리고 입덧에 특효약은 달리 없다는 것 때문에 제가 무사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생각하니 참 다행이다 싶어요.

책의 주인공인 외치가 시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 여러 시대에 자신의 심장을 치료해줄 수 있는 명의들을 찾아 다닙니다. 2000년 미국에 도착해서는 심장이식이라는 말을 듣고 기쁨에 들뜹니다. 그러나 수술비가 100만 달러를 넘는다는 말에 기함하고 대기자가 3000명 정도라는 말에 아연실색합니다.

외치의 시간 여행이 그의 심장의 유효기간 만큼이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외치는 마지막으로 2018 대한민국 서울의 의료 풍경도 경험합니다. 건강보험의 수혜를 저는 많이 보고 있기에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데, 미국의 경우와 비교 설명해주니 대한민국 국민인게 행운이다 생각될 정도입니다. 의료보험 수가, 의료보험 민영화 등의 기사를 접할 때는 그들만의 리그라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요. 이제는 좀 더 관심있게 봐야할 것 같아요. 건강보험의 여부와 적용 범위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질이 확연히 달라짐을 책으로도 경험으로도 알게되었으니까요.

잠시 잊고 있던 외치는 과연 심장을 고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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