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대리사회

꿈트리숲 2019. 1. 31. 07:41

손님의 품격

한국에는 요정이 삽니다. 디즈니 요정 팅커벨은 아니구요. 어떤 요정인지 궁금하시죠.

p 240 어느 외국인은 "한국에는 요정이 산다"라고 했다. 술에 취하면 대신 운전해 집까지 데려다주는 요정이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술을 얼마나 마셨든지 자신의 안방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자동차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고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고, 마치 요정이 다녀간 듯하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국의 대리운전 기사는 '요정'이 된다.

누구나 한번쯤, 아니면 자주 요정의 도움을 받아 본 적 있으시죠? 늦은 밤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도와 주는 분들이 그들이에요. 저도 한때 도움 받았었고, 요즘은 남편이 가끔 도움을 받습니다. 일회성 만남이라 기억에 남는 요정이 없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해요.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면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고 상황 종료되기에 그 요정들의 삶에 더 다가가 볼 생각을 못했어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펴낸 작가가 8년간의 대학 생활을 접고 나와서 쓴 <대리사회>는 대리기사의 생활을 세세히 알려줍니다. 그리고 재밌게도 따뜻하게도 그려줍니다. 현대소설 연구자가 쓴 대리기사의 삶이라 그런가요. 어두운 부분도 마치 디즈니 동화처럼 Happily ever after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장강명 작가는 추천의 말에서 '독자를 반성하게 하면서도 분노와 증오의 감정은 일절 찾아볼 수 없는 선량한 문장을 존경한다.' 고 했어요. 분명 작가의 좌절감, 상실감, 무력감, 소외감이 등장하는데 착한 글로 표현이 되어 있어 마음 불편한 부분이 없어요. 차가운 밤거리를 배회하는 대리기사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지만 글은 따뜻합니다. 그 글을 보고서 세상에 무심했던 제가 반성이 되면서 장강명 작가와 의견 일치를 봤네요. 그리고 저 역시 선량한 문장에 존경이 우러나옵니다.

무심코 하는 나의 행동이 매번 낯선 이의 낯선 차를 운전해야 하는 그들을 을의 공간으로 끌어내리게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자각하게 되었어요. 차의 가격 만큼이나 품격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와는 상반된 인격을 가진 사람도 많아요. 나보다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인지, 대리기사를 대할 때 우리는 어떤 말로 그들을 우리의 공간에 초대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p 67 사람과 사람은 장소에서 만난다. 그리고 초대한 사람이 초대받은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것으로 '환대'가 시작된다. 집에서든 사무실에서든 아니면 익숙한 식당에서든,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서는 모두가 초대한 사람, '주인'이 된다.

p 68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는, 그래서 외롭다. 조수석에 앉은 차의 주인도 함께 외롭고 민망할 것이다. 주인은 손님이 되고 손님은 주인의 역할을 대리하며, 그렇게 서로의 가면을 바꿔 쓰고 목적지까지 간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은 모두 겪어본 바가 없고, 그래서 어떻게 상대방을 환대해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대리기사를 부를 때 어떻게 환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요? 난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니 제대로 된 챙김만 받으면 된다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역전되는 어색한 공간에서도 환대가 가능하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선생님의 차라고 생각하고 편안히 운전해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이 공간의 주체가 베풀 수 있는 가장 큰 방식의 환대였다고 하는군요.

이뿐만이 아니라 대리기사와 만날 즈음에 비상등을 켜두고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든지,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먼저 건넨다든지, 내비게이션을 미리 '우리 집'으로 맞춰놓고 이대로 운행해 주시면 된다고 말한다든지 하는 식의 환대도 있더라구요. 을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철저히 갑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갑과 을의 관계를 허물고 그냥 같은 사람대 사람으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입니다.

나 하나 챙기기도 버겁고 바쁜데, 언제 남까지 신경써. 혹은 내가 돈주고 불렀는데, 내가 사용자인데 이정도 서비스는 당연한거 아니야. 하는 생각들을 했던 때가 저도 있었어요. 그런데 갑과 을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계속 바뀌어요. 대리운전을 이용하지만 우리는 어디선가 어느 때 다른 누군가의 노동을, 욕망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있곤 합니다. 갑의 공간에서는 주체로 행동하다 을의 공간에서는 철저히 말과 행동, 사유를 차단하고 대리인이 되어 사람이나 권력에 순응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봐요.

어느 위치에 있든 우리는 주체가 되어 사유할 것을 작가는 주문합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불평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것은 한 개인이 가진 사회적 책무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성찰이라고까지 말하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주체의 자리에서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하고요. 가능하면 '을의 공간'으로 내려가 손을 내밀 수 있으면 더 좋겠죠. 타인을 주체로 일으키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공간을 수직으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에 주체와 주체가 함께 머물 수 있게 수평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 사회가 함께 사는 세상 아닐까 싶어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지 않아도 따뜻한 말 한마디로 함께 가는 이들에 대한 존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잘 도착했습니다. 안전하게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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