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개인주의자 선언

꿈트리숲 2019. 1. 30. 07:09

싫은 건 싫다

 

얼마 전 <검사내전>을 읽으면서 마음에 찜해 두었던 책이에요. 검사가 쓴 책 한권으로 검사의 생활을 다 알았다고 할 수 없듯이 판사가 쓴 책 한 권 읽는다고 법조계를 다 알 수는 없지요. 그래도 전혀 모르는 것 보다 조금씩 알아가는 게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아가는데 도움 될 것 같아서 읽고 싶었던 책입니다.

두 책을 다 읽어 본 개인적 느낌은 무엇보다 판사, 검사분들이 글을 잘 쓰신다는 거에요. 독서의 가장 큰 요소인 재미를 놓치지 않아서 두 책 다 사랑받나 봅니다. 덤으로 낯선 직업의 세계를 알게 되어서도 좋았어요. 김웅 검사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자 선언>을 쓰신 문유석 판사도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는 사실. 역시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 어릴 때 읽은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다여서요. 사색과 사유의 역사가 아주 짧아요. 그래서 글은 매일 쓰지만 전문 작가가 아님에도 책을 내는 분들의 글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네요. 예전의 저 같았음 필요 이상의 비교로 일찌감치 블로그를 접었을텐데, 지금은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마저도 기분 좋습니다. 부족한 글이어도 매일 쓸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물이 차면 넘친다는 그 말을 믿고 하루하루 써나갑니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개인주의자라고 고백부터 하고 책을 시작합니다. 저 역시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개인주의자라 자부하는데요. 날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학교라는 집단, 직장이라는 집단을 거치며 개인주의를 선택했던 것 같아요. 감정을 흘리기보단 이성을 챙겨 차갑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요.

이유없이 선생님께 맞아야 하는게 싫었지만 다녀야만 하는 곳으로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닌 학교가 첫번째 집단이었어요. 학생 입장에서는 맞을 이유가 없는데, 때리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차고 넘쳤겠죠. 자의든 타의든 맞아도, 싫어도 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는 타인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서였어요. 남들 만큼은 해야한다. 튀면 안된다. 남들은 날 어떻게 평가할까 등. 어쩔 수 없는 그 이면에 '나'는 없어지고 항상 괜찮은 얼굴의 가면만 남아 있었어요. 언제나 연기하느라 몸도 마음도 병이 듭니다.

단체가 싫어진 결정타는 아마도 직장이었던 것 같아요. 경쟁을 통해 성과를 더 내려는 경영진의 야심은 알겠으나 그 야심에 치이고 멍드는 구성원들은 힘없는 을의 위치라 찍소리 못하고 하루하루 버텨야 했거든요. 힘없는 을들은 동병상련을 겪으며 끈끈하게 친해지는 부류,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쟁으로 눈엣가시 같은 부류로 나눠지더라구요.

직장생활 때 아끼는 후배가 있었는데요. 같은 학교 출신이라 동생처럼 챙겨주고 밥도 자주 사주며 친했었어요. 회사에서 해외연수 기회가 생겼는데, 제가 대상자로 선정되었어요. 다른 직원들도 내심 가고 싶었을텐데, 가지 못한 아쉬움과 허탈함을 다른 방향으로 풀더라구요. 갑자기 직원들과 저의 관계가 데면데면 해집니다. 은근히 여직원들은 저와 말도 섞지 않으려해요. 점심 시간에, 퇴근 후에 모여서 저에 대해 뒷담화를 마구해요.

개인주의자인 저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여기지만 털면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기에 수시로 수다 안주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제일 큰 역할을 한 것이 그 후배였어요. 배신감이 너무 커서 직장이, 사람이 징글징글 해요. 상사에게 해외연수에서 빼달라고 눈물콧물 쏟으며 호소했을만큼 집단 이기주의가 휘두르는 칼은 잔인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상황이 반전됩니다. 그 후배가 안 좋은 일에 연관되어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일이 생겼어요. 이제는 그 후배를 빼고 나머지 사람들이 모여서 수군수군합니다. 어색하게 그 자리에 저도 끼었어요. 해외연수 때문에 저를 욕하던 사람들이 저를 끼워서 그 후배를 까는 일에 여념이 없더라구요. '아! 이런 식으로 나도 씹었겠구나' 생각했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했어요. 나오면 또 왕따가 된다 싶어서요. 그리고 그 후배에게 쌓인 배신감도, 나만 욕한 것도 아닌데 하는 불안한 안일함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데 한 몫했어요.

p 37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집착이 무한경쟁을 낳는다. 잘나가는 집단의 일원이 되어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탈락의 공포에 시달린다. 결국 자존감 결핍으로 인한 집단 의존증은 집단의 뒤에 숨은 무책임한 이기주의와 쉽게 결합한다. 한 개인으로는 위축되어 있으면서도 익명의 가면을 쓰면 뻔뻔스러워지고 무리를 지으면 잔혹해진다.

예전의 저의 경우가 바로 이러했네요. 무리의 잔혹함에 내가 베이고, 또 누구를 베고. 아무도 행복할 수 없는 구조였던거죠. 비교가 경쟁으로 이어지고 그 경쟁은 낙오의 두려움을 낳습니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이기에 나는 부속품으로 전락해요. 자존감을 가질 수가 없게 되더라구요. 학교 성적 줄세우는 것 졸업하면 사회는 그러지 않겠지 했던 저의 순진한 생각에 쐐기를 박는 것이 직장이었어요. 직장도 여지없이 성과로 줄을 세우고 개인을 경쟁으로 내몰아요.

결국 자발적으로 퇴사를 하면 사회부적응자가 됩니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규정될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죠. 아닌 건 아니다, 싫은 건 싫다고 말하지 못한 그때의 제가 밉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돼요. 튀어서 눈밖에 나면 직장생활 힘들어지니까 무난하게 보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룰을 잘 지키느라 그랬다는 걸 알거든요.

p 57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그대들이 잃을 것은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이지만, 얻을 것은 자유와 행복이다. 똥개들이 짖어대도 기차는 간다.

오히려 무난한 사람이 안되는 것이 자유와 행복을 얻는 길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728x90

'배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당한 거리를 두세요  (4) 2019.02.07
대리사회  (3) 2019.01.31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2) 2019.01.24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6) 2019.01.21
최고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8) 2019.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