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심미안 수업

꿈트리숲 2019. 3. 20. 07:03

아름다움을 보는 눈 심미안

 

 

p 13 ‘심미안審美眼이라는 단어는 지금은 고풍스럽지만, 과거 우리 세대에서는 매우 익숙한 말이었다.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보다 우월한 능력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는 단어였다. ‘아름다움을 살피는 눈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심미안을 갖게 되는 건 결국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몇 해 전 사진을 배우면서 심미안이라는 단어에 천착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림을 그리기엔 재능이 없는 것 같고, 악기를 배워 음악을 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아 사진에 욕심을 냈었어요. 예술적 감각을 키우고 싶은 제게 사진이 제일 만만해 보였지요. 그래서 사진 수업을 기웃했었습니다.

 

 

p 205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찍는 일, 남들이 본 것을 다르게 찍는 일, 다르게 찍은 것을 특별하게 보여주는 일, 사진은 쉬운 만큼 갈증이 크고, 차별화도 어려운 예술이다.

 

사진이 이렇다는 걸 모르고 무식하게 덤볐어요.

기초부터 열심히 배웠는데요. 이론 배우고 다음 수업 때까지 사진 찍어 와서 검사 맡고 또 이론 배우고. 큰 프로젝트 화면으로 제가 찍은 사진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자니 제 자신이 한 없이 쪼그라들었어요. 선생님이 지적하는 부족한 점은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고요. 카메라 탓만 했습니다. 더 좋은 카메라면 더 잘 찍을 수 있는데 하고요. 제가 가진 카메라도 결코 저렴한 카메라가 아닌데도 더 고가의 카메라 가진 분에게 관심이 쏠리더라구요.

 

 

벚꽃이 한창이던 때 처음 출사 수업을 나갔어요. 수강생들은 다들 꽃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데, 벚꽃 나들이 나온 시민이 저에게 사진을 부탁했어요. 전 손사래를 치며 얼른 그 분들을 선생님께 안내해드렸지요. 그 분들의 핸드폰으로 선생님이 사진을 찍어줬어요. 사진을 요청했던 분들이 너무 잘 찍었다고 놀라는 거에요. 혹시 전문가냐고 하면서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사진을 못 찍는 건 카메라 탓이 아니라 심미안 때문이었다는 것을요.

 

p 36 심미안은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커가는 능력이다. 스스로 훈련하는 것이다. (중략) 나만이 경험한 내 것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온갖 곳을 돌아다녔다. 보고, 맛보고, 듣고, 느끼고, 무조건 경험했다.

 

저도 심미안을 가지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저의 전략은 3! 3 가지 많이 수행하기!

많이 보기, 많이 느끼기, 많이 해보기. 이게 제가 생각하는 심미안 갖기 3수였어요.

어딜 가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디지털 카메라여서 찍은 사진 바로바로 확인하고 삭제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대를 살고 있나 몸소 느끼면서요. 필름카메라 시대 때 사진을 배웠더라면 아마도 돈 무진장 썼겠죠.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일상에 이렇게 사진이 될 만한 것들이 많았나 새삼 놀랐어요. 길가에 피어있는 풀, 꽃에 앉아 있는 벌, 지나가는 자동차, 노을 지는 하늘, 그리고 아이의 웃는 얼굴, 하다못해 빗방울조차도 다 카메라 앵글 안에서는 작품이 되더라구요. 그동안 전 너무 감탄 없이, 감상 능력 없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초라해졌어요. 감탄이 없는 삶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풍요롭지가 않습니다. 감정의 메마름은 돈이 윤택하게 해 줄 수가 없거든요.

 

의도적으로 심미안을 가져보려 전시회도 다니고, 공연과 건축을 보고 음악을 듣는 행동이 조금이나마 저의 심미안에 일조 했을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행위들이 심미안 목적이 아니었더라도 이전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어서 쉽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은 시키지 않아도 뜯어말려도 사람의 마음이 열립니다. 작가는 관심의 강도만큼 알게 되고, 닮고 싶은 만큼 다가가게 된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심미안이 자신의 관심과 마음 크기에 비례한다는 말이 아닐런지요.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됐어요. 누구나 찍을 수는 있지만 아무나 작품을 남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요. 그래도 좋아요. 전시회 작품은 못 남겨도 매일 조금씩 늘고 있는 심미안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일상이 사진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지금도 사진에 대한 욕심은 놓치지 않아요.

 

p 200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이름난 출사지에서만 삶의 결정적 순간이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에요. B컷이라 지난 가을 호암미술관 포스팅에서 제외되었던 사진. 다시 보니 삶의 결정적인 순간이네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