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1

꿈트리숲 2019. 3. 25. 07:12

땅에서 시작된 기나긴 여정

 

 

오래전 토지를 1, 2권 읽다 만 제게 남편이 토지 완독을 권했던 적이 있었어요. 본인이 읽어보니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필독서인것 같다고 하면서요.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토지를 읽으며 울기도 하고 중요부분 필사도 하고, 단상을 쓰기도 했으니까요. 예전에 제가 토지를 읽다 말았던 것은 아마도 토지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던 것 같아요. <토지>라는 대작이 주는 분위기, 방대한 양이 주는 압박감, 그리고 수많은 등장인물을 기억하고, 사건의 연관성을 살펴야 하는 세심함 등이 그 무게가 아니었나 싶어요.

 

언젠가 다 읽을 날이 오겠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독서모임 지인분들하고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 뿐이지만 대작을 읽게 되어서 뿌듯하고요, 또 박경리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많이 기대도 됩니다. 1969년부터 시작한 <토지>는 26년 동안 원고지 4만여장을 아우르면서 시대와 작가의 삶을 다 녹여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제가 주로 책을 읽고 후기를 블로그에 남기는데요. <토지>도 꼭 남겨놔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작품을 기억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은 박경리 작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과연 제가 좋은 후기를 쓸 수 있을까는 모르지만 어설프더라도 제 마음에 담긴 <토지>를 써 보는 것이 책과 작가에 대한 감사 표현의 한 방법일 것 같아요. 책은 작가의 손에서 떠나면 독자의 눈에서 마음에서 다시 태어난다 생각합니다. 꿈트리 블로그에서 <토지>나무를 빽빽이 세워 하나의 숲을 또 만들어보고 싶네요.

 

<토지>의 배경은 1897년부터 시작됩니다. 등장 인물들의 과거사도 등장하기에 1897년 이전의 동학혁명, 갑신정변 얘기도 나와요. 역사 책에서나 볼 법한 사건들이 실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살아내야 하는 삶이었음을 책으로 확인하니 역사가 역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 스토리 처럼 느껴지네요소설이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지>는 역사의 증언이기도 하기에 더욱 살아있는 이야기 같아요.

 

토지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었어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토지의 전체 이야기를 대부분 알고 계실 듯 싶어요. 저도 대충의 스토리는 알고 있는데, 1권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아니 잊고 있었던 인물을 만나게 됐습니다.

바로 강청댁’이에요. 이용의 아내이자 월선과 임이네 사이에서 질투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여인네이지요.

 

p 105 칠성이 말대로 강청댁은 질투가 강한 여자였다. 한평생을 사람 기리는 것이 무엇인지,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농촌 아낙들, 그 중에서 과부라든가 내외간의 정분이 없는 여자들에게 야릇한 심화를 일게 하는 만큼 용이는 잘난 남자였고, 그 같은 잘난 남자를 지아비로 삼은 강청댁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질투는 이 여자에게 영원한 업화였으며 사나이의 발목을 묶어둘 만한 핏줄 하나가 없었다는 것도 노상 불붙는 질투에 기름이었던 성싶다.

 

남편에게 첫사랑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시작한 결혼인데, 그 첫사랑이 과거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이면 누구라도 질투가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시대 같으면 깔끔하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텐데, 미우나 고우나 남편 그늘 아래서 평생을 기대어 살아야 하는 여자 입장에서는 남편 마음 붙들어둘 자식하나 낳지 못한 자신의 신세가 측은하기만 합니다.

 

그런 강청댁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는 아무도 없어요.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강청댁은 질투로 의심으로 때로는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토지 1권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말로써,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사람 개인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시대가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다면 나오지 못했을 인물이죠.

 

p 124 조령모개의 정치적 혼란을 빚게 한 새로운 문물제도는 오백 년 세월 동안 쌓아올린 가치관을 뒤죽박죽 만들어놓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상층에 이를수록 그것은 심하였고 중앙에 가까울수록 급격한 것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풍전등화 같은 나라 사정이 평사리에까지 서서히 뻗치고 있어요. 시대와 무관한 소설도 있지만 시대라는 씨줄이 없이는 사람이라는 날줄이 들어갈 명분이 힘을 잃습니다. 구한말 열강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조선의 운명처럼 나라님 땅을 부쳐 먹고 사는 백성들의 토지는 곧 힘센 사람들의 것이 됩니다. 시대와 사람의 교차점에 사건은 발화하고 스토리는 점점 무르익네요.

 

p 389 나랏일인디 임금님이 요량 알아 허실 것인디 그리 싸워쌀 거 없지라우.

 

이 문장을 보면서 그 나랏일이 성격은 조금 바뀌었을지 몰라도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관심을 요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요. 임금님이 알아서 하시게 백성들은 관심을 끈 결과가 역사와 소설을 바꾸었지요. 지금 어디선가 <토지> 같은 소설이 또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사와 소설을 바꾸는 맘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토지>에서 뭔가를 느끼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지 3  (6) 2019.04.08
토지 2  (9) 2019.04.01
코스모스  (8) 2019.03.19
인문학 공부법 실천편  (4) 2019.02.22
사피엔스 - 2  (4) 2019.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