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2

꿈트리숲 2019. 4. 1. 07:25

서서히 시작되는 균열

토지 1권의 얘기는 링크 참고해주세요.

2019/03/25 - [Book Tree/북스타트] - 토지 1

지난주에 이어 토지 2권의 얘기를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한 두 개씩 전개되고, 인물들도 눈에 익다 보니 1권보다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네요. 1권의 주 인물은 용이와 월선이 강청댁이었다면 2권의 인물은 귀녀, 평산이, 강포수, 최치수라고 생각합니다.

외세가 들어오지 않고, 나랏일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이익에 빠져있지 않았다면 별다른 사건없이 조용히 흘러갔을 평사리인데요. 그런데 중앙에서부터 시작된 세상의 변화가 저 멀리 평사리에도 감지되면서 굳건하기만 할 것 같았던 최참판댁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양반이라는 중심축을 끼고 최치수의 음모와 귀녀의 음모가 따로따로 굴러가지만 결국 하나의 중심축을 끼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양반이 무너지면서 같이 침몰하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어요. 음모의 한 바퀴를 차지하는 최치수는 이부동생 구천이(환이)를 잡으려고 합니다. 그 입으로도 사람 사냥이라고 해요. 명분은 자신의 아내와 야반도주 했다는 것이고 속내는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구천이에게 쏟아내고 싶었던 거지요. 윤씨부인은 절에서 몰래 환이를 낳은 이유 때문에 치수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여러 사건들의 발아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찌되었든 최치수의 계략은 실패로 끝납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구천이와 같이 머슴 살면서 형제 같은 정을 쌓은 수동이의 적극적 개입으로 구천이는 가까스로 살게 되죠.

또 다른 음모 하나는 귀녀와 김평산이가 꾸민 것입니다. 귀녀는 최참판댁 종이에요. 종의 신분을 역전시켜보겠다는 야심과 무시당하고 괄시당한 기분을 앙갚음 해주겠다는 보복심, 그리고 사랑하진 않지만 최치수에게 여자로서의 존재확인을 받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한데 어우러져 큰 사건을 꾸미지 않았나 싶어요. 거기에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김평산이 한몫 잡아 개다리 무반이라는 설움을 날릴 요량으로 합세해서 사건의 판이 좀 더 커지게 되었지요.

귀녀는 사랑방 시중을 들면서 호시탐탐 최치수의 관심을 끌려 합니다. 그러나 최치수의 마음을 알길 없는 귀녀에게는 그의 무관심과 냉대가 치욕스럽고 언제가될지 모를 그날까지 기다리기기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김평산, 칠성이와 모의해서 비어있는 별당을 차지하려 간 큰 계획을 세워나 싶습니다.

김평산과 귀녀가 감독과 연출을 맡고, 귀녀가 주연, 칠성이가 조연을 맡은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진행되는데 갑자기 뛰어든 강포수로 인해 얘기가 더 풍성해집니다. 강포수는 최치수가 사람 사냥을 위해 불러들인 나이 사십줄에 접어든 사냥 전문가에요. 조준구의 신식총에 반해 최참판댁으로 왔는데, 귀녀를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처음엔 나이차를 생각하며 마음을 접으려고 하지만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죠. 과감히 귀녀에게 고백을 하고 하룻밤을 보냅니다. 귀녀는 김평산과 모의 한 일로 임신을하기 위해 이전에 칠성이와 가진 여러번의 잠자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을 받습니다.

p 243 ‘와 그리 싫었이까? 구역질이 날 만큼 싫었는데, 칠성이 그놈! 그래서 애기가 안 생깄이까.’

귀녀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칠성이와의 잠자리는 목적을 위한 고행 그 자체였음을 작가는 넌지시 알려주네요. 암튼 원하고 바라는 임신에 성공했고, 이제 기회를 보고 터뜨리기만 하면 귀녀, 김평산, 칠성이 세 사람의 욕망이 실현될 것 같았는데, 그만 강포수의 양심선언으로 일은 틀어지고 말아요. 강포수가 최치수에게 귀녀와 살고 싶다고 사냥에 따라다닌 값을 받지 않는 대신에 귀녀를 달라고 말해버려요. 최치수는 남 속도 모르고 귀녀에게 그러라고 하는데 그간 공들여 쌓은 탑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 평산이와 또 다른 계략을 꾸밉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음모는 또 다른 계략으로 덮는 것이죠. 결국 최치수는 김평산의 손에 살해되고 귀녀, 김평산, 칠성이의 드라마도 그들 모두 발각되는 것으로 결말을 맞아요.

p 372 농민들은 상도가 몸에 밴 장사꾼처럼 인사치레에 깍듯해지는 법이다. 우선 그들은 하느님께 감사하고 나라님께 감사하고 터주님께 감사하고 조상에게 감사를 올린다. (중략) 푼수, 바로 이 푼수를 헤아리는 겸양 때문에 이들은 최치수의 죽음을 보고 하느님이라도 살해된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굳건한 믿음, 농민들에게는 하느님과도 같은 양반댁의 흉사가 그들 일상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어요. 나라 땅의 임자이신 나라님은 멀었고 만 석의 벼를 거워들이는 토지 소유자인 최참판댁은 가까웠다고 작가는 표현하는데요. 농민들의 삶의 터전인 토지를 소유한 최치수가 죽었기에 그들의 삶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균열의 씨앗이 발아하고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잉태하면서 다음의 얘기들이 궁금해지네요. 3권도 기대가 됩니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를 많은 분들이 읽어야지 하면서 쉬이 시작할 수 없다고 하시는데요. 저는 한권 한권 개별 소설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전권을 완독하고 후기를 남겨도 좋겠지만 그럴려면 20권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서요. 한권씩 읽고 후기를 써보고 또 각권마다 중심 인물과 그들이 빚어내는 중요 사건들을 기록해두면 완독의 높은 산도 무난히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 주에 한권씩 클리어 해나가는 기분도 꽤 괜찮네요. <토지> 읽기 마음만 먹고 계시다면 한 번 도전해보세요. 시작이 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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