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토지 5

꿈트리숲 2019. 4. 22. 06:50

간도로 간 사람들

 

 

매주 월요일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한 권씩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인데요. 지난주로 토지 14권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2부가 시작됩니다.

 

4권 말미에서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사람들은 자신들의 토지를 버리고 도망치듯 간도로 갔어요. 마지막에 길상의 마음을 저울질 해보던 봉순이는 모이기로 했던 장소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는데 간도로 이주한 인물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가 없네요. 평사리에서 봉순이와 길상이 그리고 서희의 흔히 일컬어지는 삼각관계가 있었다면 간도, 용정 땅에서는 서희, 길상이, 그리고 상현의 삼각관계가 그려집니다.

 

요즘을 생각하면 얽히고 설킨 삼각관계를 연상할 수 있는데요. 100여 년 전의 그들은 마음으로 성을 쌓았다 허물기에 작가의 심리묘사와 내면을 함축한 대사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흥미진진해요. 떠나기 전의 세상은 양반과 종의 신분이 서로의 마음을 가로막았다면 용정에서는 그런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있어서 거칠 것이 없어보이는데, 500년을 내려왔던 신분제가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되지는 않나봐요.

 

여전히 애기씨이고 서방님이고, 나이는 많아도 종은 종으로 부리고 하대를 하더라구요. 1부에서 잠깐 등장했던 상현은 이동진의 아들입니다. 이동진은 서희 아버지 최치수의 친구이지요. 서희의 할머니 윤씨부인이 생전에 상현을 손녀사위로 삼고 싶어 했었어요. 그러나 상현은 이미 정해놓은 혼처가 있어서 성사되지 못했구요.

간도로 떠날 때 상현은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는 몸이었는데, 독립 운동하러 떠났던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본다는 명분하에 서희에 가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단념하지 못하고 함께 간도로 왔어요. 길상이 스물여섯, 상현 스물하나, 서희 열아홉. 지금으로치면 아직 미성년자에다 이제 대학생, 대학 졸업할 청년의 나이지만 그때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들입니다. 머릿속에 결혼이 큰 화두로 자리잡고 있을 때에요.

 

p 44 “해서 하는 얘기야. 서희는 혼인을 해야 할 게야.”

해야겠지요.”(중략)

자네하고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육박해온다. 벌겋던 길상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진다. 상현은 그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자네가 장가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지?” (중략)

세상이 달라지고 곳이 달라졌다는 말씀을 드린다면 저는 비겁한 놈이 됩니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고 곳이 달라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억지를 쓰시는 일은 선비 체통에 어긋나는 일 아니겠습니까?”

비로소 상현은 머쓱해진다. (중략)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게야.”

자네가 똑똑한 것도 알고 잘생긴 것도 안다. 이곳은 내 땅이 아니지만 우린 조선사람이야.”

아무리 세상이 뒤죽박죽 반상의 구별이 없어졌기로 일조일석에 근본이 바뀌어지는 것은 아니야.”

 

길상과 상현의 대화인데, 서로 서희의 마음을 차지할까봐 경계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상현의 얘기에 길상 역시 이미 혼인한 상현에게는 서희가 못 오를 나무라고 못을 박아줘요. 서로의 마음을 들킨 대화여서 머쓱해지고 핏기도 가시고 그러네요.

평사리의 집과 땅을 다 버리고 온 서희는 여전히 권세와 부를 누리고 있는 모습인데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싶었더니 책에서 잘 소개를 해줍니다.

 

p 80 서희가 어떻게 하여 부자가 되었는가. 그러니까 1908년 칠월 초순, 일행이 회령가도를 지나 용정촌에 도착했는데 공노인이 그때까지 용정촌에 살고 있었다는 것, 그 사실이 일행에게는 매우 중요하였고 서희가 축재할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다.

 

공노인은 월선의 외삼촌인데요.일찍이 용정에서 거간을 겸한 객주업을 해서 상거래에 대해 훤하고, 인맥이 많다는 장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신용 하나가 밑천인 공노인은 서희가 빠르게 부를 쌓을 수 있게 길잡이 노릇을 했었던거죠. 서희는 윤씨부인이 죽기 얼마전 조준구의 눈을 피해 서희 방의 농발 대신 괴어두게 했던 막대기 속에 숨겨둔 금은이 간도에서의 사업 밑천이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종자돈이 있어야 빨리 부를 일굴 수 있고 밑천이 많으면 많을수록 크게 일어설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하나 용정에서 큰 불이 났는데요. 용정의 절반이 탈 정도의 불이였죠. 그 시기를 잡아서 건물 짓고 세를 놓아 돈을 더 크게 불립니다. 타이밍도 중요함을 100년 전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확인을 하네요. 서희는 이렇게 돈을 모아 반드시 하동으로 돌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꿈속에서도 잊지 못할 원수를 꼭 갚으리라 하면서요.

 

간도에서는 새로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요. 그중 한 사람, 바로 김두수라는 인물인데요. 생김새며 행동거지가 영 찜찜한데, 알고 보니 거복이였어요. 1부에서 최치수를 살해했던 김평산의 첫째 아들이죠. 어릴때부터 말버릇이며 손버릇이 좋지 않아 함안댁한테 늘 혼나고 그랬는데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외가로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 못하고 일찍이 집을 나가버렸죠. 그런 거복이가 김두수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지 아비를 쏙 빼닮았다는 외모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는 표현대로 앞으로 먹구름을 몰고 올 것 같아 토지의 인물들보다 제가 먼저 걱정이 되네요. 다음 얘기도 얼른 봐야겠어요.

토지 6권으로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요.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8) 2019.04.30
토지 6  (8) 2019.04.29
토지 4  (10) 2019.04.15
도덕경 함께읽기  (12) 2019.04.09
토지 3  (6) 2019.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