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새로운 가족이 생겼어요

꿈트리숲 2019. 6. 11. 07:13

곁에 두고 오래 보려면

 

 

지난번에 서울식물원 다녀오고서 식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이전에도 관심이 있긴 했으나 적극적으로 집으로 데려와야겠다 생각은 안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식물원 가보고는 초록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눈의 편안함이 좋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초록이를 우리 집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일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남편도 딸도 식물을 좋아해서 초록이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 가서 우리 가족이 될 아이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양재 꽃시장으로 고고!! 식물을 좋아하긴 하나 양재까지 가야 하나 하는 얼굴들이었지만 막상 도착하고서는 초록이들을 하나하나 보느라 발걸음을 못 떼더라구요. 심지어 남편은 식물원 보다 볼거리가 더 많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어요. 저도 처음 가본 화훼 공판장에서 좋은 에너지 듬뿍 받고 왔습니다.

 

 

 

 

 

 

 

일요일에 갔더니 생화도매시장은 문을 닫고 분화온실만 문을 열었어요. 생화들을 못 봐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초록이들은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집에서 빈 화분을 미리 챙겨갔더니 화분 값은 굳히고 원하는 식물만 쏙 심어올 수 있었어요. 꽃시장에 화분과 기타 장비를 판매하는 자재상은 일요일도 영업을 하니까 현장에서 마음에 드는 화분을 구매하실 수 있어요. 예쁜 식물들은 다 데려오고 싶었지만 고르고 골라서 한 가지만 선택을 하자니 너무 미련이 남아 두 가지를 선택했어요.

저 하나, 딸 하나 했는데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던 남편은 집에 와서 후회를 하네요. 본인도 하나 선택할걸 하구요. 다음에 또 가기로 하고, 휴일 꽃시장 나들이는 성공적으로 마감했습니다.

 

 

 

우리집의 새로운 가족을 소개합니다. 다빈치와 피카소에요. 딸아이가 이름을 붙여줬어요. 식물명은 파키라와 죽백나무인데요. 죽백나무는 일명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라고 해요. 작년 수능때 하루 7~80개씩 판매했다고 가게 사장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어떤 소원이라도 괜찮은지... 우리 집에서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소원을 들어주길 바라봅니다.

 

기존에 집에 있던 식물들도 우리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는데요. 어쩌면 그 아이들이 자기의 몫을 120% 발휘했기에 식구 늘리기를 마음먹었는지 몰라요. 제가 미다스의 손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뭔가를 잘 키우는 손도 아니에요. 예전부터 집에서 키우는 것들이 멀쩡하게 살아남은 게 없을 정도거든요. 2년 전에 잠깐 함께 살았던 조카가 분가하면서 선물로 주고간 용심목과 스투키, 백토선은 꽝손인 저에게도 안성맞춤 식물이었어요. 잊고 있어도 잘 크고, 물을 대충 주는 것 같은데도 초록미를 뿜뿜하더라구요. 그래서 식물을 더 추가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게 된 것 같아요. 식물 키우는 것 어렵지 않구나 감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혼 때 나름 식물 인테리어를 했었어요. 혼자서 들기 힘든 화분도 여러개 둘 정도로 크고 작은 식물들을 집에 두었는데요. 과한 사랑과 심각한 무관심으로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고 몇 개 안남은 것 마저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흙을 파먹으려고 해서 친정으로 보내게 되었어요. 그때는 반려식물이라는 용어가 없을 때여서 함께 한다, 떠나보낸다는 그런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이제는 자신 있게 나와 함께한다고 우리 가족과 같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동물은 무서워해서 반려견, 반려묘에 도전할 수가 없는데요. 함께하는 그 시간과 자리를 식물로 채워도 저에겐 충분합니다. 소리 내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한 공간에서 같이 숨 쉬며 사는 가족이라 생각해요. 며칠 전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왜 나이 들면 꽃이나 식물이 좋아진다고 할까요?’ 남편은 그러더라구요. ‘사람이 늙어가면서 생명력이 점점 시들어가니까 오히려 파릇파릇한 식물을 곁에 두고 보고 싶어서 아닐까요하고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젊을 때는 자신의 청춘만으로도 충분히 벅차서 아마 주위의 어떤 푸름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그랬던 것 같거든요. 나이 들면서 세월의 더께는 덧붙여지지만 시간의 흔적은 마음의 여유를 더 내고 생각의 틈을 더 만들어 냅니다. 그 여유와 틈 사이를 뭔가로 채우고 싶은게 인지상정인 듯싶어요. 누군가는 반려동물로 누군가는 반려식물로 말이죠. 떠나가는 것이 많은 나이에는 곁에 두고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요. 과한 사랑을 주어 독이 되지 않도록, 무관심으로 사랑에 목마르지 않도록 새로운 가족과 함께 잘 지내야겠습니다.

 

 

728x90

'비움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 보물전  (12) 2019.07.24
집앞 식물원  (10) 2019.07.16
덕후시리즈 2탄  (13) 2019.06.05
덕후시리즈 1탄  (14) 2019.06.04
서울책보고  (10) 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