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그리스 보물전

꿈트리숲 2019. 7. 24. 06:49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가 오늘을 정복한다

 

 

 

그리스 보물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일찍이 접하고서 방학 때 한번 보러가 주리라 맘 먹고 있었어요. 어느 날 문득 제 눈에 띈 '단 하루 천원' 광고. 그리스 보물전 티켓을 단돈 천원에 겟 할수 있다는 건가? 하면서 폭풍 클릭을 했는데요. 이미 광클 하신 분들이 다 차지하고 전 뒤늦게 매진 두 글자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는지 최선책 대신에 차선책을 던져 주셨어요. 50% 할인 티켓이 있더라구요. 이것이 왠 떡이냐 하며 얼른 예매를 했습니다.

 

 

두둥!!! 그리스 보물전 보러 가는 날이 왔어요. 미술관이나 박물관 나들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딸의 마음을 살살 구슬려 같이 데려가기 작전을 펼칩니다. 맛있는 거 사줄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봐 등등.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며 못 걷겠다는 협박아닌 협박을 해서 계획 수정하여 편안히 승용차로 VIP를 모셨습니다.

 

방학이라 관람객 엄청 많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주차장도 헐렁하고 매표소 앞은 더 널널하더라구요. 저의 최애 VIP는 예술의 전당을 가면 으레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앵콜 칼국수'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된 곳이죠. 딸의 시그니처 메뉴는 얼큰 칼국수인데요. 저도 같은 걸로 해서 이열치열 맛있게 한그릇 뚝딱 비웠습니다.

 

 

 

참새는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걸까요? 아니면 일부러 들르는 걸까요? 엄마 참새 딸 참새는 금새 배부르게 먹방을 찍고 바로 테라로사로 들어갑니다. 시원한 음료와 새콤달콤 케익은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죠. 그나저나 우리 전시회 보러온 것 아닌가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그러거나 말거나 딸과 저는 온갖 개그를 늘어 놓으며 박장대소를 합니다. 서로 자기의 개그가 더 좋다며 우기다가 레드썬!!! 본격 그리스 보물전 시작합니다.

 

 

작년에 아이네이스를 읽었었어요. 그때 눈에 익었던 인물이 아가멤논입니다. 아가멤논이 신화 속 인물인지 실제 인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제우스가 고조 할아버지이고 보면 신화 속 인물에 가깝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가 대표 작품으로 나와 있어서 실존 인물이었나 싶어 제 마음의 추가 신화와 실화 사이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하인리히 슐리만' 이라는 이름 들어보셨나요?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네이버 지식백과를 살펴보면 그가 죽을때까지 트로이 유적을 잘못 알았다고 하는데, 위 아가멤논의 황금가면도 슐리만이 발굴했다고 해요. 그러나 황금가면은 아가멤논의 시대보다 400년 앞선 시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복잡해지네요. 신화는 진짜 신화인지 아니면 실화인지요. 암튼 그리스는 신화의 덕을 많이 보는 나라인 것만은 분명해요. 그런 의미에서 신화가 계속 신화로 남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12시대가 그리스의 얼굴에 새겨져 있다니 각각의 시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얼마나 다양하고 다이나믹할까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고작 신화 이야기 몇 편, 그리고 몇몇 시대의 단편적인 이야기들 뿐인데요. 그것들을 퍼즐 맞추듯 하려니 군데군데 비는 곳이 많아서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네요. 꾸준히 고대 문학과 이런 전시들을 접하면 구멍이 좀 메워질까 기대해봅니다.

 

 

오랜 세월 살아 남은 토기, 신들의 그림이 도자기에 새겨져 있어서 가능했을까요? 신심이 녹아들어 몇 천년이 지나도 마치 어제 처럼 제 앞에 있습니다. 책에서나 보던 것을 실물로 보니 그리스 박물관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어요.

 

이번 전시에서 저는 금 장신구들 보다 석상이나 부조 작품들이 훨씬 좋았어요. 금 공예는 이미 우리에게 너무나 흔한 것들이라 예전거라고 더 신기하거나 아름답다 느껴지지는 않더라구요.

 

 

반면 대리석으로 빚은 여러 조각들은 저의 발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돌에 영혼을 불어넣어 신도 만들고 남자도 여자도 만들고 동물도 만드는 것이 너무신기했어요. 옷의 주름 하나하나 머리카락 한올한올 놓치지 않고 조각하면서 고대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잠시 뚫어지게 석상들을 쳐다봅니다.

 

 

 

 

 

 

 

혹시 비극과 희극 표시가 잘 못되었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는데도 희극배우 가면이 비극같고 비극이 희극같아요. 아까 카페에서 저희 모녀 웃을때 얼굴을 생각하니 입은 함지박 만하고 얼굴은 온갖 근육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희극배우 가면과 비슷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 루트 처럼 그리스의 보물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면 어느 것 하나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잘 어우러진 문화가 인류 문명의 전진을 가져오는 계기, 그리스 보물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이 드네요.


  

그리스의 보물이 한국으로 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애씀이 있었어요. 그리스 전역에서 모은 350여점의 보물을 먼 나라까지 보내려면 큰 결단이 필요했을 듯 싶은데요. 물론 공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리스 사람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아요.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가 세상을 정복한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말처럼 국보가 훼손될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극복했기에 전 세계에 그리스 문화와 역사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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