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꿈트리숲 2019. 6. 21. 07:06

흔들리며 오래가기

 

 

예전엔 새롭고 반짝반짝 하는 것들만 관심이 갔다면 이제는 손때 묻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것들에도 마음이 갑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라고 얘기하기도 하는데요. 그 말도 맞고 저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넓어지고 세계를 품는 여유가 더 넉넉해졌다고 생각을 해요. 책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점점 그 경계가 넓어지다 보니 꼭 새것만 좋은 게 아니구나, 오래되었다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구나 싶어요.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책을 읽고 우리 집에는 오래된 것이 뭐가 있을까 한번 찾아봤어요. 제가 가진 것들 중에 대를 이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결혼 할 때 모두 최신의 것을 샀기 때문이지요. 제가 또 버리기를 엄청 잘 하는 사람이라 오래된 것들이라고는 별로 없네요. 18년 된 <체 게바라 평전>, 결혼 할 때 샀던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그릇들, 그리고 아이 나이와 같은 에어컨이 제가 가진 오래된 것들입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 제가 가는 곳에는 오래된 곳들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봤는데요.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유행에 따라 워낙 빨리 뜨고 지는 가게들이 많다보니 몇 십 년 대를 이어 변함없이 고객을 맞는 곳이 드물어요. 책에서는 단지우유인 바나나맛 우유를 소개해줬는데요. 단지우유를 보니 초코파이도 생각나고 새우깡도 생각납니다. 내 주변에 오랜된 것들이 많았었네 싶어요. 초코파이는 아주 어릴 때도 먹고 청소년기, 대학시절, 심지어 지금 제 아이도 먹고 있으니 대를 이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겠죠.

 

p 7 오래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본질을 갖고, 지속적으로 시대와 호흡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노력이 반드시 눈에 보여야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닿게 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오래 사랑받는 것들은 자기만의 가치를 보여주는 데 능한 것이라고 더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눈뜨면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한 제품이 세대를 이어 사랑받기란 진짜 어려운 일일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고 사랑받는 건 변화하는 시대와 함께 변화를 추구하고 때로는 변화를 선도했기 때문일텐데요. 그러면서도 그들의 본질은 결코 변함이 없기에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인기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오래된 것들이 인기가 있다 보니 갓 태어난 가게나 제품이 오래된 것들의 외양을 흉내내는 경우도 적잖아 있는데요. 겉모습은 카피해도 오랜 시간 쌓인 축적의 힘은 단숨에 따라할 수 없어요. 작가는 좋은 비주얼은 시간을 견뎌내고 확장된다고 얘기 했어요. 가짜 비주얼은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부서지고 끊어진다고요. 좋은 비주얼에는 뭐가 있기에 그럴까요?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만 남기는 지혜가 담겨 있어서 오래가는 것들이 되었다 싶어요.

 

제 나이도 어느덧 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까지 왔어요. 세상에나 저는 정말 중년이 될 줄은 20대 때 상상도 못했었어요. 도적처럼 성큼 다가온 중년을 맞으면서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건 뭘까, 내가 꼭 남겨야만 하는 건 뭘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중요한 몇 가지만 남겨서 그걸 가지고 끝까지 가 보는 것이 중년 이후의 삶을 사는 지혜가 될 거라 생각해요. 남의 비주얼을 카피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러나오게, 나답게 만드는 것에 필요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포기하게 하는 자신과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좋은 말로 포장하자면 저는 저의 본질에 집중하느라 화장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 낳고 화장품의 화학성분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보다는 나를 뭔가로 가리는 것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더라구요. 한 두 번 안하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화장을 하는 시간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꾸밈의 시간이 저에겐 큰 의미로 여겨지지 않아요. 화장을 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10분 정도일텐데요. 그래도 10분을 하기 위해 제품 구매에 드는 시간, 계절 맞춰 바꿔줘야 하는 노력, 유행 파악하는 관심도 필요합니다. 그 모든 걸 하지 않는 대신 저에게 저 자신에게 더 밀도있는 시간을 쓰고 있어요.

 

p 89 ‘안 해야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은 시간을 밀도감 있게 쓰는 일이기도 하다.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빨리 쌓인다.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는 건, 자기와 맞지 않는 일에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화장을 끊은 지도 어언 10여년이 된 것 같아요. 10여년 시간 동안 저는 저를 더 깊이 찾아봤어요. 세상을 더 넓게 느껴봤어요. 세상과 나의 접점을 찾느라 뻘짓도 참 많이 했는데, 그게 다 성장의 진통이었던거에요. 밀도감 있게 시간을 쓴 덕분에 그나마 지금 매일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합니다. 오랜된 것들의 비밀을 습득하는 데는 나에게 맞는 일에 시간을 촘촘하게 투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던 거더라구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p 230 흔들리는 진통이 흔들리지 않는 전통을 낳는다.

 

내적, 외적으로 많은 진통을 겪으며 계속 하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라는 사람의 전통은 그런 진통이 만든 결과물이겠지요. 단숨에 식어버리는 열정보다 지속하는 힘, 그 힘을 만들어주는 진통을 오늘도 슬기롭게 극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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