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명견만리

꿈트리숲 2019. 6. 26. 06:31

우리가 만드는 집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오늘은 아파트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아파트가 그냥 사는 집이 아니라 부동산이라 지칭이 되면 그 순간부터 자산으로 격상되고 매매가니 갭투자니 하는 전문 용어가 붙는 게 현실이죠. 저는 그런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건 아니구요. 제가 아파트에 살면서 이 아파트가 사람과의 단절 공간과의 단절을 불러일으킨다는 생각은 많이 못해봤거든요. 책을 보면서 또 한 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명견만리는 TV프로그램 제목이죠. 가끔씩 보고 싶은 프로그램인데, 책으로 모두 엮어서 내어주니 참 고맙습니다. 벌써 네 번째 책이 나왔어요. 이번 책의 주제는 모두를 위한 공존의 시대를 말하다 인데요. 불평등, 병리, 금융, 지역 편으로 소주제로 나뉘어요. 우리가 꼭 같이 얘기 나누고 해결책을 찾아봐야 하는 주제들이죠. 불평등 주제에도 많은 생각거리가 있었는데, 지역 편에서 아파트 얘기가 나오니 더 피부에 와닿더라구요.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산으로 둘러 싸였다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다보면 전국 방방곡곡 아파트 없는 곳이 없어요. 이제는 전 국토가 산이 아닌 아파트에 둘러 싸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에요. 심지어 프랑스 학자는 우리나라를 방문했다가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를 보고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책까지 냈다고 하는군요.

 

우리는 편리하다는 측면에서, 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 면에서 아파트가 최선이다 싶은데 그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유럽은 인구 밀도가 낮아서 아파트가 많이 없고, 우리는 그 반대겠거니 생각했는데요. 오히려 프랑스 파리보다 우리나라 서울의 인구밀도가 낮아요(파리는 1제곱킬로미터당 23천명, 서울은 1제곱킬로미터당 17천명). 파리에는 8층 이상 고층 주택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고층 아파트가 많은 이유를 인구밀도 때문이라고 우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p 253 한국인들이 이렇게까지 아파트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아파트 건설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1950~1960년대 황금시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고도성장을 했다. 이때 서구권의 나라들은 국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동네마다 축구장, 도서관, 수영장 등이 생겨났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그럴 여력이 없었죠. 국민의 생활환경 보다는 국가 기반 시설 닦는데 여념이 없었어요. 경제 발전에 도움 될 만한 도로, 항만에는 적극 투자하고 자연과 공공 시설은 부족한 채로 그냥 방치했는데요.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생활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겨납니다.

 

p 254 더 나은 주거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욕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정부는 아파트 단지를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1960~1970년대 성장을 통한 근대화를 가치로 내세우던 시절, 아파트 단지는 집권층의 정책 방향과 정확히 맞물리는 산물이었다. 아파트를 한두 동이 아니라 단지로 지으면 정부가 도시환경에 투자하지 않고도 잘 정비된 동네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우리의 아파트 사랑은 시작되었나 봅니다. 그때 좀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길게 내다보고 집을 지었을텐데, 많이 아쉽네요. 한때 우리는 도시화가 뒤처지는 나라 중 하나였어요. 그 원인을 온돌 구들장에서 찾기도 하는데요. 도시화가 진행되려면 건물이 23층 위로 쌓아 올려져야 하는데, 구들장은 무거워서 적층이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옆나라 일본이 도시화가 진행될 때 우리는 단층 주택만 있었다고요. 그런데 지금은 대도시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도시들도 모두 높은 아파트를 가진 곳으로 변모 했습니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더 도시화가 잘 진행되었어요. 아파트만 놓고 보면요.

 

아파트가 세대수 많은 단지 형대로 지어지니 우리는 단순히 집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동네까지 구매하는 셈이에요. 길도 놀이터도 공원도 모두 사유재산이 된거죠. 철저히 아파트 단지 사람들만 이용하는 사유재산이요. 그래서 벽을 공고히 둘러 외부와 차단하며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도 아파트 그 자체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동네의 역할까지 갖추어서 참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해요. 조경이 멋져서 아침저녁 산책하기 그만이고, 수영장, 헬스장, 골프연습장을 갖추고 있어 바쁜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이지요. 또 단지 내 카페는 저렴한 가격에 음료를 마시고 얘기 나눌 수 있는 더 없이 편한 곳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는 두말 할 것도 없어요.

 

 

그런 좋은 곳을 아파트 주민만 이용할 수 있어요. 외벽을 쌓는 건 미관상 좋지 못하다 하여 그냥 생 울타리로만 구분해놨는데요. 이것 때문에 불만인 주민들도 있습니다. 내 사유재산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건 환영할만한 일이 못 된다는 거지요. 사유재산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가는데, 외부와의 단절은 고립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어요.

 

p 263 아파트 단지의 역사가 수십 년에 이른 지금 그곳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세대가 등장하면서 아파트 단지라는 공간이 우리의 심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안 이기적 심성이 길러지는 것이다.

 

단독 주택에 사는 사람이 아파트 사람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우리가 이기적인 사람이여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건축물을 만들지만 그 건축물은 다시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

 

우리가 만드는 집이 우리를 세상과 단절되지 않도록 만들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자연이 옆에 있다고 알려주는 개구리 소리 입니다.

 

 

728x90

'배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식물 예찬  (10) 2019.07.03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14) 2019.06.28
오래가는 것들의 비밀  (18) 2019.06.21
돈 공부는 처음이라  (12) 2019.06.20
여행의 이유  (12) 2019.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