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가끔 영화

영화 - 나의 소녀시대

꿈트리숲 2019. 7. 26. 06:00
                    꿈트리... 나의 소녀 시대

제가 20대에는 개봉작은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로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요. 물론 과한 폭력, 욕설, 성적인 내용 등은 지양하고 대부분 잔잔하거나 재밌는 영화 위주이긴 했어요.(그래서 정우성 배우의 영화를 한편도 못본 기이한 일이...) 

그러던 제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정말 가뭄에 콩 나듯 간간히 영화를 봐와서 또 애니만 봐와서요. 영화에 대한 감이 이제 많이 떨어졌어요. 요즘은 거의 딸을 통해 영화 정보를 얻고 아이가 좋다는 것 위주로 보게 됩니다.

몇 주 전 딸이 뜬금없이 “엄마 유덕화 알아?” 하고 물어왔어요. 내가 아는 그 유덕화를 말하는건가...
“홍콩 배우 유덕화?” 했더니 그렇다고 그래요. 
"당연히 알지, 근데 왜?" 
"어... 지금 보는 영화에 유덕화 나와." 
"뭐? 그럼 너 지금 90년대 영화 보고 있는거야?"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최근 영화인데,  유덕화가 나이 들어서 나와."

이런 대화가 오가고, 딸아이가 보는 영화가 급 궁금해졌어요. 학교에서 영화를 보여줬는데 시간 관계상 다 보지 못해 아쉬워서 혹시나 넷플릭스 찾아보니 있다고 아주 흥분을 하면서 보고 있더라구요. 그 이후에 아이는 그 영화를 10번 넘게 더 봤다는 건 안비밀입니다.

영화 제목이 <나의 소녀시대> 에요. 90년대 초 대만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린전신(여주)과 쉬타이위(남주)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제가 딱 좋아하는 로코 장르군요. 

유덕화 나오는 장면을 찾아서 저에게 보여주는 딸, 기억 속의 유덕화에서 살짝 주름지고 머리가 약간 희끗한 모습이지만 확실히 유덕화 맞습니다. <천장지구>의 그 유!덕!화! 꺄~~~악!!!

갑자기 천장지구를 보던 그날로 시간이 거슬러 거슬러 지나갑니다. 저의 소녀시대로 타임슬립했어요.

고등학교 때 매주 목요일마다 정규수업 끝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요. 학교 산책할 친구는 산책가고 운동장에서 선생님들 스포츠 경기 응원할 사람은 응원가고, 밖에 몰래 살짝 나갈 사람은 조용히 사라지고... 이도저도 아닌 사람은 교실에서 영화를 봅니다. 

저는 어느 부류에 속해 있었을까요?  산책? 선생님 응원? 저... 밖에 몰래 살짝 나가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그 시절 전 빵순이였어요. 가장 핫한 빵집이었던  파리바게트 빵을 먹어봐야 했기에 쓰레빠 끌고 허락받지 않은 외출을 감행했어요. 심심찮게 교문에서 선생님께 걸리면 외출에 대한 꾸지람보다 쓰레빠 끌고 나갔다는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습니다. 大 ‘**여고’의 품위를 손상했다구요. 

어렵사리 사온 빵을 친구들과 공유하며 빵맛에 대한 품평을 하곤 했는데요. 어느 날은 밖에 나가기가 찜찜해서 교실에서 영화나 봐야겠다며 하릴없이 TV를 멍하니 보고 있었죠.

그날이 바로 <천장지구> 날 이었어요.  세상에 저 배우 누구야!? 오토바이에 웨딩드레스 입은 오천련을 태우고 달리는 모습에 저의 심장은 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8~90년대 홍콩 영화의 인기는 아마 지금의 헐리우드 영화 못지 않았을거에요. 홍콩 배우들 또한 한국 광고에 출연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었지요.

4대천왕 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우리의 책받침을 책임지고 있었던 그분들. 요즘도 잘 계시겠죠? 전 그 중에서도 유덕화와 여명을 특히 좋아했어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 하고. 저의 소녀시대에 한 자락 추억의 지분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저의 소녀시대에는 유덕화가
딸의 소녀시대에는 왕대륙이 되는건가요?

<나의 소녀시대> 에서 여주인공 린전신은 덥수룩한 머리에 큰 안경을 쓴 그래서 자신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알지 못하는 소녀인데요. 더벅머리 외모만 보면 저의 십대 시절과 거의 싱크로 90프로 이상입니다. 그래서인지 괜스레 여주인공에게 정이 많이 가더군요.

주목받지 못하는 외모에, 남학생에게 연애 편지 한장 받지 못하는 린전신이지만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빛나는 소녀입니다. 반면 외모가 너무 출중하지만 자신안에 커다란 잠재력이 있는 줄 모르고 방황하는 쉬타이위. 그들 각자의 첫사랑 밀어주기 작전을 펼치다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다소 뻔한 스토리 같지만 대사를 곱씹으며 추억을  여행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영화였습니다.

10대 시절 누구나 가슴에 커다란 보석 하나씩 간직하며 성장해요. 그런데 살면서 그 보석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는 사람은 많이 없지요. 린전신도 그런 어른으로 성장했구요. 직장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치이는 신세가 되다 보니 그런 보석이 있었는지 조차 잊어버린 듯 살고 있어요. 

다행히 옛 추억이 꺼져가는 보석의 빛을 다시 살려줍니다. 쉬타이위가 10대 때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거든요. 물론 영화여서 가능한 스토리겠지만 현실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살려내는 누군가는 반드시 있을거라 믿고 싶어요. 

늦어도 결코 늦지 않았음을 나이 드니까 알게 되더라구요. 내가 끝내기 전에는 끝나도 끝난게 아니니까요.

여자가 괜찮다는 건 안 괜찮다는거고, 상관없다는 건 상관있다는 거야.”

10대 소녀는 자신의 진심을 에둘러 표현하지만 이제 어른 여자는 당당하게 말할테죠. 그 시절 반대로 표현해서 놓친 것들이 많고 잃은 것들이 있기에 이제는 감정에 솔직한 나의 어른시대를 보낼거에요.

10대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 같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오늘이 청춘임을 알기에 나의 소녀시대는 아직도 계속되기를 빌어봅니다. 나의 소녀시대에게 말해 줄려고요. 네 마음의 보석, 아직 잘 간직하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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