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페미니즘 교실

꿈트리숲 2019. 9. 17. 06:48

세상을 새롭게 보는 렌즈

 

 

제가 몇 년 전에 어떤 분과 대화 중에 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오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분이 저에게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그래서 전 남녀 간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냐, 그러니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저와 대화를 나눴던 분은 평소 책도 많이 읽으시고 종교도 갖고 계신 분이기에 성 소수자에 대한 인권에도 관심이 많으시구나 생각을 했는데요. 제 말에 돌아오는 그분의 말씀은 동성애는 고쳐야 하는 병이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글쎄요 하며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는데 요즘 같아선 미리 책을 봐뒀더라면 책을 권해드렸을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예전에 비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리기도 하고 지난달에 은유 작가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가의 강의를 듣기도 해서 그런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더 고조됩니다. 최근에 읽었던 <호모데우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책에서도 성 소수자 이야기가 언급되었는데요. 동성애는 절대 병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국제질병 분류에서도 삭제되었구요.

 

그런데 아직 우리의 시각이 변하지 않는 건 다수의 사람들이 따르는 논리가 무조건 옳다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았기 때문일 거예요. 생각의 여지를 두지 않고, 소수의견에는 귀를 막고 들어보려 하지 않는 어른들부터 바뀌어야 할 듯싶습니다.

 

<페미니즘 교실>, 책 제목이 이젠 낯설지 않습니다. 예전의 대화 기억이 아니었다면 최근의 강의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저에겐 그들만의 이야기였겠지요. 아홉 분의 교사, 작가, 연구원, 교수, 인권활동가 등이 페미니즘에 대해 학생들에게 쉽게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덕분에 페미니즘이 뭔지 알고 싶은 페미니즘을 글자로만 알고 있는 저 같은 사람도 수업을 받듯 차근차근 잘 따라갈 수 있었어요.

 

p 6 흔히 페미니즘을 렌즈에 비유합니다. 렌즈를 쓰면 뻑뻑하고 불편하지만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페미니즘도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요.

 

전 시력이 많이 나쁘기에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아요. 처음엔 세상 불편하지만 쓰고 나면 세상 이렇게 잘 보이는 걸 왜 모르고 살았나 싶거든요. 쓰는 순간 신세계입니다. 이제까지 흐릿하게 보고 두루뭉술하게 알고 넘어갔던 것들이 분명해지고 명확해지고 더 잘 살아갈 것 같은 기분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저는 성 소수자나 동성애와 페미니즘이 무슨 관계인가 궁금해한 적이 있었어요. 페미니스트는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활동가들 아닌가 하고요. 때로는 단어의 정의가 우리의 생각을 많은 부분 지배하고 있다 여겨요.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예전에,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던 말이라고 서술해놓았습니다.

 

p 186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종족, 능력, 성적 지향, 지리적 위치, 국적 혹은 다른 형태의 사회적 배제와 더불어, 생물학적 성과 사회문화적 성별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정치적 의제들”,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실천하는 사람

 

위 설명은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새롭게 내린 정의입니다. 페미니즘은 굳이 여성만을 지칭하지 않아요. 차별과 혐오를 받는 모든 소수자를 향합니다. 계급과 능력으로 차별받는 약자, 인종과 종족으로 배제되고 성적 지향으로 혐오를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페미니즘입니다.

 

유명인들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도 하고, 페미니즘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 변화는 더딘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물풍선 비유를 하며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p 25 물풍선을 바늘로 찌르면 풍선이 터지며 물이 아래로 쏟아집니다. 그런데 그것을 느린 영상으로 다시 보면 물이 쏟아지기 직전에 풍선의 모양을 잠시 유지하는 게 포착됩니다. 한때 자신이 담겼던 풍선의 모양을 찰나라도 붙들고 유지하고 싶어하는 그 관성. 사회의 혐오와 차별의 관습은 그 찰나의 관성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결국 물은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중력이 있는 한은요.

 

우리 사회의 차별 기준이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누구나 한번은 차별을 받게 되고 소수자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렇기에 어른인 우리부터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페미니즘 교육은 우리 사회의 표준이 아닌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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