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사기병

꿈트리숲 2020. 2. 26. 06:00

여러 블로그에서 소개되어 알게 된 <사기병> 책. 벌써 작년의 일입니다. 올해 1월에는 ‘2020년을 여는 책 중에 하나로 신문에 소개되기도 했어요. 이쯤되면 책을 봐야만 할 것 같죠.

 

제 몸이 아픈 입장에서 다른 누군가의 투병기를 본다는 건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책을 통해 작가를 알고 싶었어요. 어떤 병으로 투병하고 있는지, 나와는 동병상련할만한 부분이 많아 다른 사람보다 작가를 더 잘 이해하겠다는 오지랖이 발동하더라고요.

 

<사기병>을 쓴 윤지회 작가는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또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요. 현재 위암으로 투병 중이세요. 투병 중에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낼 수 있다니 제 기준으로는 철인입니다, 정말로.

 

책에서 그림으로, 글로 설명되는 많은 상황과 증상들 대부분 이해가 됨은 물로 격하게 공감되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거의 겪어봤기 때문인데요. 경험해본 사람만 가슴 절절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도 많아서 읽다가 한참을 먹먹하게 허공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오심과 구토로 변기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라던가, 아무것도 못 먹을 땐 먹방이라도 보며 참고, 식욕이 돌아와서는 혼자서도 너끈히 먹방을 찍는 등 윤지회 작가의 그림 속에 제가 있었고, 글 속엔 저의 이야기가 그려져서 마음이 쓰리고 안타깝고 그러네요.

 

병원에 있으면서 힘내라는 전화, 많이 먹으라는 문자 등 많이 받았었는데요. 저 역시 제일 좋았던 건 저의 답이 없어도 꾸준히 보내 주는 문자 메시지와 블로그 댓글이었습니다. 외로운 병원 생활, 지루한 투병 생활에 기쁨과 활력소가 되어줬어요.

 

그러나 억지로라도 먹으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역시 윤지회 작가처럼 물도 못 넘기는 상황에서 듣게 되니 참 괴롭더라고요. 미음을 받아놓고 삼키지 못해 눈물만 삼킨 사람의 심정, 반대 상황이 온다면 전 그렇게 말해주겠어요. “힘들면 좀 쉬었다가 시도해보자. 못 먹겠으면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요즘 아침에 눈 뜨면 머리 카락이 얼마나 빠졌나 얼굴은 얼마나 부었나 확인을 해요.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은 우수수, 얼굴은 호빵을 넘어 달덩이가 되어가고 있다지요. 만약 처음 겪는 일이었다면 정신적 충격이 컸을텐데, 십여 년 전에 한 번 경험해봤다고 우울한 기분은 없습니다. 그제 딸과 나눈 대화 잠깐 보실래요.

 

“어릴 땐 엄마 얼굴이 호빵이어도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객관적으로 보이는구만.”

“객관적으로 보인다는 거는 호빵이어서 못생겼다는 얘기? 넘 사실적인 멘트 아니냐?

하긴 객관적으로 보일 나이도 됐지. 어릴 땐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좀 없어...ㅋㅋ”

 

비수(?)를 꽂아도 꽃송이처럼 다가오네요. 딸과 나누는 벽이 없는 대화, 개그감 충만한 이런 대화가 전 좋습니다. 서로 더 많이 웃겨주려 하다보니 우울할 새가 없어요.

 

겨우내 따뜻한 니트 모자로 휑한 머리 잘 견뎠는데요. 봄이 오면 가벼운 모자로 바꿔줘야 할 것 같아요. 이왕이면 머리카락이 다시 풍성해져서 모자 쓰지 않고 다니면 더 좋겠지만요. 그래도 모자 쓰고라도 다닐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제 팔도 입원 중에 생긴 멍이 퇴원 후에도 몇달 간 있었어요. 주사 바늘 꼽느라 실패한 흔적들, 오색 찬란한 멍 훈장을 양 팔에 여러개 받았었죠. 다섯 명의 간호사가 돌아가며 두세 번씩 찌르면 짜증을 넘어 자포자기 하는 심정까지 되는데요. 결국 수간호사까지 와서 상황이 종결되긴 했지만,  이만저만 지치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도 저지만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한 간호사의 마음도 힘들겠다 싶더라고요. 가까이서 지켜본 의사와 간호사, 안쓰럽기도 하면서 고맙게 생각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환자를 정성껏 치료해주는 의료진들 덕분에 마음 편히 아플 수가 있으니까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겪는 긴장과 부담감은 얼마나 클까요? 보통의 날들도 그럴진데,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엔 그 무게가 몇 배는 더하리라 생각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 최일선에 계신 분들, 환자 치료에 밤낮없이 수고하시는 의료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각자의 어려움을 안고 산다. 때로는 정말 지치고 힘들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자라는 내 모습을 마주한다. (372쪽)

 

윤지회 작가님, 건강 잘 보듬으셔서 새로운 책 또 써주세요. 작가님의 투병기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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