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미술에게 말을 걸다

꿈트리숲 2020. 3. 4. 06:00

<미술에게 말을 걸다>, 그림 보는 것 좋아하지만 그림 잘 모르는 ‘미알못’을 위해 아는 척 좀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림 속에 감춰진 화가와 그들의 뮤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안내가 되어있어요.

 

블로그에 전시회 리뷰를 가끔 올리지만 전문 지식에 한참 못 미치는 저의 개인 느낌만 담겨서 아쉬울 때가 많았는데요. 그때마다 작가의 삶, 작가가 살던 시대, 화가의 뮤즈 등 좀 더 알면 좋겠다고 느끼곤 합니다.

 

<미술에게 말을 걸다>가 저의 그런 부분을 시원히 긁어 줬습니다. 흔히 그림을 보면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도슨트나 전문가의 감상평 참고하게 되죠. 책 제목은 그 반대로 미술에게 우리가 말을 걸어 보라고 합니다.

 

온전히 나만의 생각으로 그림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라는 거죠. 저의 생각, 일반인의 감상평 별로 쓸모없지 않을까요? 작가는 달리 말합니다.

 

우리는 결국 ‘쓸모없어짐’으로 향해 갈 텐데 그 쓸모없음의 가치를 인정하는 여유를 가진 것이 예술입니다. 슬플 때 우리를 위로하는 것들은 효율과 성과가 아니라 대부분 비효율적인 시간들이라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체감합니다. 우리를 안심하게 하는 세계는 효율의 세계가 아니라 쓸모없음을 인정하는 세계입니다. 우리 모두 천천히 쓸모없어짐의 세계로 가고 있기에 우리가 쓸모없다고 느낄수록 예술은 꼭 필요한 것이지요. (25쪽)

 

쓸모없음의 대표적인 것이 물건의 포장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특히나 내용물이 초콜릿이라면 얼른 그 달콤함을 먹고 싶어 포장지에는 별 관심도 주지 않을텐데요. 고디바 초콜릿 한 번쯤 들어보셨나요? 혹시 고디바 초콜릿의 포장지는 어떤 건지 기억나시나요?

쓸모없다 생각했던 그 포장지, 대충 보고 넘겼던 브랜드의 심벌 속에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어요. 그렇다면 고디바의 심벌 속 그림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여인이 왜 말을 타고 있지? 왜 옷을 입지 않고 있을까? 고디바는 왜 이 그림을 심벌로 채택했을까? 초콜릿 이름이 왜 고디바일까?’

 

중세 시대 영국의 레오프릭 백작은 소작농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징수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름다운 부인 고다이바는 높은 세금을 내느라 힘겨워하는 농민들을 위해 남편에게 세금을 낮춰달라고 요구해요.

 

레오프릭 백작은 세금을 낮춰줄 마음이 없었기에 아예 실행 못할 것 같은 조건을 아내에게 제시합니다. 고다이바가 벗은 몸으로 거리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낮춰주겠다고 한 거죠.

 

예상을 깨고 고다이바는 나체로 말에 올라타 거리를 한 바퀴 돕니다. 기독교인, 귀족의 딸, 백작 부인, 그리고 십 대라는 나이까지 생각하면 고다이바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없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실행에 옮겼어요. 남편은 부인에 감동해서 세금을 낮추고 훌륭한 영주가 되었다고 하는군요.

 

존 콜리어, 레이디 고다이바

고다이바의 전설은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가봐요. 나체 시위와 희생정신을 대표하는 것으로 말이죠. 존 콜리어는 서정적인 분위기로, 에드윈 랜시어는 당당한 여성으로, 그리고 페트릭 머피는 현대 화가답게 뭉크의 절규와 콜라보한 것처럼 그려냈습니다.

에드윈 랜시어, 고다이바
페트릭 머피, 고다이바

고다이바의 실제 이름은 고디푸로 추측된다고 하는데요. 앵글로색슨어로 ‘신의 선물’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고디푸를 라틴어로 발음한 것이 ‘고다이바이’구요. 이쯤되면 고디바 초콜릿이 왜 고디바인지 감이 잡힙니다. 초콜릿, 특히나 벨기에의 고디바 초콜릿은 신의 선물 만큼이나 달콤하고 값지다란 뜻 아닐까 어림짐작 해봅니다.

 

무심코 보았던 초콜릿 포장지의 그림에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니 무척 놀랍습니다. 전설은 화가들의 호기심과 영감을 깨우고, 화가들의 그림으로 우리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고,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사실과 역사도 발견하게 됩니다.

 

발견이란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다. (174쪽)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그저 재밌는 전설이네 하고 지나쳤겠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미술에게 말을 걸어보고 다른 생각, 다른 발견을 해냈다는 것, 미술에게 말을 걸어본 후 저에게 돌아온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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