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사이언스?

꿈트리숲 2020. 2. 27. 06:00

히가시노 게이고가 과학책을? 아! 작가가 공대 출신이니까 그럴수도?! 하면서 펼쳤는데 에세이집이었어요. <사이언스?>라고 책 제목에서 은근 이건 과학책이 아니야 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습니다. 과학이고 싶지만 과학책이 아닌 재미로 읽어달라는 에세이, 편집자의 요청대로 전 재밌게 읽었습니다.

 

2003년~2005년 두 군데 잡지에 기고했던 글 28편을 엮어 에세이로 묶어낸 것이 <사이언스?>인데요. 과거로 시간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또 일본과 우리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무엇보다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거구나 하고 처음으로 생각하며 본 책이 됐어요.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 리뷰했던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책에서 에세이는 어떻게 쓰는 것인지 언급을 했었거든요.

 

에세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자가 자기 생각이나 생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자유롭게 쓰는 것을 허락하는 장르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쓰면 자칫 그걸 쓴 당사자 본인만 즐거울 뿐이야. 독자들도 그것을 읽고 즐거우려면 그 글 안에는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이 되거나 마음에 스미는, 혹은 투명한 깨우침을 주는 인생의 교훈 같은 것을 선물처럼 숨겨두어야 한다고 봐.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中)

 

이에 덧붙여서 하루키 작가가 요런 에세이를 잘 쓴다고 추천을 해줬는데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히가시노 작가는 어떻게 썼을까 유심히 보게 되더군요. 이러쿵저러쿵 개인 얘기가 독자들도 뭔가 얻어가는 얘기로 넘어가는 예시 한번 보실까요?

 

‘유사 커뮤니케이션의 함정1’ 편에서 인터넷 만남 사이트들의 문제를 얘기하다 남자와 여자의 개인 영역의 차이에 대해서 알려주는데요. 저도 새롭게 안 사실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개인 영역의 넓이가 완전히 다르다는군요.

 

남자는 1미터에서 2미터나 되는 데 비해 여자는 수십 센티미터도 안 된다고 한다. 즉, 남자는 조금만 곁으로 다가가도 상대를 의식하지만 여자는 개의치 않는다는 뜻이다. (중략)

파티장에서 남자는 옆으로 온 여자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한다. 자기 옆에 왔으니 무슨 의도가 있는 것 아니겠냐(=내게 마음이 있는 것 아니겠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여자에겐 아무 의도도 없다. 아니, 남자에게 다가갔다는 자각조차 없다. (10, 11쪽)

 

남녀가 인지하는 이런 개인 영역의 넓이 차이 때문에 스토킹 범죄도 종종 발생한다고 해요. 개인 영역의 넓이 차이를 인지하려면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하는데요. 현대 사회는 가면 갈수록 개인화되고 유사 커뮤니케이션(이메일, 스마트폰 등)이 늘어나서 사람과 실제로 만나는 훈련장이 줄어든다고 작가가 많이 안타까워 합니다.

 

유사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다가 스리슬쩍 현대 사회를 꼬집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스킬. 소설가가 에세이를 쓰면 더 와닿게 잘 쓴다고 했던 임경선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것은 누구일까. 공무원도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바로 사기꾼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들은 어떤 대참사도 일확천금을 얻을 기회로 볼 뿐이다. (160쪽)

 

이 부분은 마치 우리 이야기인 것처럼 공감이 됩니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이죠. 그래서 큰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재난지역을 돕기 위해 성금 모금 같은 걸 자주 하나 봐요. 사기꾼들은 이런 때를 놓치지 않고 인터넷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성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 가거나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선진국인 줄 알았던 일본에 이런 면도 있나 싶어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생각이 든 대목이에요.

 

우리도 지금 재난에 준하는 심각한 위기 상황인데요. 바이러스 발병 초기 때 마스크 매점매석 때문에 마스크를 구할 수 없고, 가격도 몇 배로 뛰었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정부가 나서서 매점매석, 폭리 취하는 업체들 단속하고 수출도 제한한다고 하니 여유롭게 마스크를 구할 수 있을까 기대해봅니다.

 

혈액형 이야기서 부터 DNA 이야기, 야구, 올림픽, 원자력, 환경 등 우리 생활에 밀접한 주제로 자신만의 생각을 재밌게 풀어낸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이언스?>. 방콕에서(해서) 읽기 좋은 책입니다.

 

728x90

'배움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10) 2020.03.05
미술에게 말을 걸다  (12) 2020.03.04
사기병  (16) 2020.02.26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0) 2020.02.25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  (10) 2020.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