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가끔 영화

모노노케 히메

꿈트리숲 2020. 3. 18. 06:00

그림 - little space

얼마 전부터 넷플릭스에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이 줄줄이 오픈되기 시작했습니다(왓챠에서도 볼 수 있어요).

미드, 중드, 코난까지 달릴 만큼 달린 딸에게 또다시 정주행할 타깃이 생겨서 아이는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지브리 애니메이션들 중에 <모노노케 히메>는 아이가 어릴 때 이해하기 좀 어려울 것 같아서 보여주질 않았는데요.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보고는 인생 영화라며 엄지 척을 어찌나 하던지요. 아이가 엄지 척을 수없이 한다는 건 제가 꼭 봐야만 하는 영화라는 뜻입니다.

 

아이가 조르고 졸라서 <모노노케 히메>를 강제 시청하고, 또 외압에 못 이겨 리뷰까지 쓰고 있습니다. 한 달 가량 버텼으니 제 나름 많이 버텼다 싶어요. 매일 아침 눈뜨면 아이가 첫 번째로 하는 말이 ‘오늘은 무슨 글을 쓸 거야?’에요. 평소 제 글에 관심도 주지 않더니만 바라는 바가 생기니 부쩍 관심 표현을 하는군요.

 

애면글면하는 딸의 소망을 어미의 어중된 글솜씨로 만족시킬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오늘도 진솔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군요.

 

<모노노케 히메>는 1997년 개봉되어 꼬박 1년 동안 일본 극장에서 상영되었다고 하네요. 일본 아카데미 수상도 하고요. 미야자키 감독이 작품 구상만 16년을 하고 제작은 3년이나 걸린 대작입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정극 못지않게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데요. 딸의 강권에 보긴 했지만 잘 봤다는 생각이 드는 애니메이션. 어른을 위한 애니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봤던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들처럼 그냥 한 번 보고 잊어버릴 영화가 아니다 싶어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도 곱씹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줬던걸로 기억하는데요. <모노노케 히메> 역시 주제가 강렬하게 다가오는 영화라 끝나도 쉽게 덮을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아! 자연의 증오와 한을 너희가 알겠느냐.

 

아시타카가 속해있는 에미시족 마을에 어느 날 아주 커다란 재앙신이 나타나서 마을과 사람들을 헤치려고 합니다. 그때 아시타카가 나서서 활을 쏘고 재앙신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내는데요. 이 재앙신은 죽으면서 본 모습인 멧돼지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멧돼지는 숲을 지키는 신 중의 하나였는데, 인간들로 인해 숲이 파괴되어 그 원한을 떠안고 재앙신이 된 거였어요.


누구든 운명을 바꿀 수는 없어

하나 운명을 기다리느냐 운명에 맞서느냐 택할 순 있지.

 

한편 활을 쏘았던 아시타카는 재앙신의 원한을 받아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을 운명에 처하자 재앙이 어디에서 왔는지, 왜 재앙신들이 생기는지 알아보러 부족을 떠납니다. 자신을 오랫동안 품어주었던 곳을 떠나 성장을 이루는 우리의 모습이 언뜻 보여요.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변화를 꾀하고 낯선 타인들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모습. 두 시간의 애니메이션 안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타타라 마을에 도착한 아시타카 앞에 숲을 파괴하여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넓히려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철을 생산하여 무기를 만들고 철저히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 애쓰는데요.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모노노케 히메, ‘산’입니다. 타타라 마을 사람들은 ‘산’의 이름을 몰라요. 분명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나 그들처럼 살지 않는다고 모노노케 히메라고 부르죠.

 

모노노케 히메는 우리말로 원령공주라고 번역이 되었는데요. 원한을 품은 혼령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이 ‘산’을 두려움의 대상이자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서 부르는 호칭이었던 거예요. 숲에 버려져서 들개가 키운 ‘산’은 그가 엄마라고 부르는 들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포함, 모든 생물의 삶의 터전인 숲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과 싸움을 벌입니다.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는 아시타카. ‘산’의 생각이 옳지만 그렇다고 자기 마을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숲에서 쫓아낼 수도 없는 상황인데요. 그런데 결국 인간의 욕심은 자연마저 정복하려 들고, 생명과 죽음의 신인 사슴신의 목을 베어 숲을 차지하려 합니다. 그러자 숲은 일순간에 죽음의 공간이 되고 마는데요. 결말 스포는 보는 이들의 즐거움을 위해 생략하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환경 오염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서 얘길 하고, 딸은 인간과 자연의 화합에 대해서 얘기 하는데, 둘 다 맞는 이야기 같아요. <침묵의 봄>에 이어 다시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생 영화를 만난 딸은 그림으로 감동을 남기고, 저는 글로 남깁니다.

 

728x90

'비움 > 가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든 피겨스  (12) 2020.06.12
인터스텔라  (12) 2020.03.12
82년생 김지영  (8) 2020.01.31
엑시트  (22) 2019.09.19
영화 - 나의 소녀시대  (19) 2019.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