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책

종이 동물원

꿈트리숲 2020. 4. 3. 06:00

신문에 난 책 소개를 보고 찜해둔 책 <종이 동물원>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책을 그냥 읽으면 되지 무슨 마음 먹기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저에겐 준비 기간이 조금 필요했어요. SF는 영화도 그리 즐긴 편이 아니었고 더욱이 SF 소설은 저에게 미지의 영역이었죠. 그래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SF소설을 펼칩니다.

 

<종이 동물원>은 총 14편이 모인 단편 선집인데요. 전 첫 번째 단편에서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겨서인지 나머지 13편의 감흥은 좀 적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종이 동물원> 같은 SF 소설이라면 앞으로도 쭉 보고 싶어집니다.

 

“아빠는 엄마를 카탈로그에서 골랐다.” (14쪽)

 

잭은 미국 아빠와 홍콩 엄마 사이에 태어난 우리로 치자면 다문화 가정의 아이예요. 1970년대 미국에선 그런 일이 흔했는지, 잭의 아빠는 결혼 중개 회사에 가입해서 카탈로그로 신부감을 고릅니다.

 

홍콩 출신, 열여덟, 영어 능통. 그리고 사진이 전부인 정보만 가지고서 결혼을 합니다. 홍콩 사람이라는 것만 빼고는 다 엉터리 정보였는데, 그럼에도 잭의 아빠는 홍콩 신부를 맞이합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 (14쪽)

 

호랑이 해에 태어난 잭에게 엄마는 종이 호랑이를 접어 줍니다. ‘라오후(호랑이)’. 라오후는 으르렁거릴 수도 있고, 다른 종이 동물들을 쫓아다니는 건 예사로 하지요. 엄마가 접어준 라오후를 비롯한 종이 동물들에겐 치명타가 있었습니다. 바로 물과 공기에요. 물에 젖으면 몸을 못 가누고, 짓눌려져 공기가 빠지면 그냥 종이로 변하고 말죠.

 

그럴 땐 응급의사로 엄마가 나타나서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고 랩으로 붕대처럼 감싸줍니다. 라오후를 비롯한 염소, 사슴, 물소, 상어 등은 잭의 어린 시절 배꼽 친구들이었습니다. 엄마의 종이 동물만이 잭의 친구였어요.

 

잭이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를 사귀자 잭과 엄마 사이에 그리고 잭과 종이 동물들 사이에 변화가 생기는데요. 다른 친구들과 자신의 생김새가 다름을 인지한 잭은 엄마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짜증을 냅니다.

 

왜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외국인 엄마가 있는 건지, 왜 내 눈은 동양인 눈처럼 생긴 건지, 왜 중국 음식을 먹는 건지 등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은 부정하고 싶어 합니다. 당연히 엄마가 만들어준 종이 동물들도 찬밥 신세가 되었고요.

 

아직 영어에 익숙지 않은 엄마에게 영어로만 말하라며 엄마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는데요. 급기야 아빠도 아들과 소통하려면 영어를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사랑(love)’이라고 말할 때, 난 그 말을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켰다. “하지만 ‘아이(愛)’라고 말하면, 여기서 느껴요.” 엄마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23쪽)

 

이 부분에서 제 마음이 울컥하는 소리가 들리네요. 모국어는 가슴을 통해 전달되고, 외국어는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이구나 하고요. 하나뿐인 아들에게, 그것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자신의 모국어를 나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일까 생각해봤어요.

 

우리나라에도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외국 여성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한국어를 빨리 배워 우리 사회에 적응하려 하고, 자녀들 교육을 위해서도 자신의 모국어보다는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하죠.

 

그럴 때 그들이 느끼는 마음이 바로 잭의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슴이 느끼는 말을 하고 싶은,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은 마음이요.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과 더불어 언어로 인한 소통 부재는 그들에겐 더없는 외로움일 것 같아요.

 

“내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

 

잭이 고등학생 때 엄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죽으면서 종이 동물들 담아 놓은 상자를 꼭 열어보라고 유언을 남기는데요. 이제 시시한 종이 동물 따위는 관심 없던 잭. 엄마가 죽고 2년 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라오후가 다시 활동을 재개합니다.

잭은 손을 뻗어 오랜 친구를 맞이하죠. 라오후는 잭의 무릎에 풀쩍 뛰어 올라 저절로 풀어져 버립니다.

 

“네가 웃었을 때 난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만 같았어.” (33쪽)

 

라오후의 몸 안에, 엄마의 편지가 빼곡 적혀있었어요. 아들에게 가슴으로 전하고 싶었던 말,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엄마의 역사, Her Story가 펼쳐집니다.

 

허스토리에 눈물 훔쳐도 저 책임 못지지만 그래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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