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달과 6펜스

꿈트리숲 2020. 5. 11. 06:00

어릴 때 축약본으로 봐서인지 몰라도 서정적인 여운으로 기억하고 있는 <달과 6펜스>, 화가 고갱의 삶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서는 그 제목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던 적이 있어요.

 

몇 년 전 고갱 전시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 그의 그림을 따라가다 보니 이번엔 고갱이 더 이상 이전에 제가 알던 고갱이 아니게 되더라고요. 그를 아예 다른 세상으로 인도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단지 사랑이라는 말로는 뭔가 꽉 차지 않은 느낌이었죠.

 

그때 봤던 그림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떤 건지 느껴보고 싶습니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결혼 생활 17년째를 맞고 있는 40대 주식 중개인이에요. 아들, 딸을 두고 교양있는 부인과 영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돌연 모든 걸 버리고 파리로 갑니다. 부인은 남편이 바람났다고 생각하여 이 책의 화자인 ‘나’에게 남편을 좀 만나봐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바람난 정부와 멋진 호텔에 있을 줄로만 알았던 나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호텔에서 홀로 있는 스트릭랜드를 마주합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집을 나왔노라고,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얘기합니다. 맨땅에 헤딩하듯 스트릭랜드의 외롭고 힘든 화가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예술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예술가의 개성이 아닐까 한다. 개성이 특이하다면 나는 천 가지 결점도 기꺼이 다 용서해주고 싶다. (8쪽)

 

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독특한 개성이 필요조건인지 충분조건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독특한 개성이 있어 예술적 기질을 낳는 것인가, 아니면 예술을 하기 위해서 독특한 개성을 끌어들이는가 하고 말이죠. 소설의 말미에 가서 이 의문이 어렴풋하게나마 풀리는데요.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는 걸. 그런 사람은 갤리선의 노 젓는 나무 의자에 쇠사슬로 묶인 노예처럼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하지 못해요. 스트릭랜드를 굴레 지어 놓았던 그 열정도 사랑처럼 사람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죠.

 

스트릭랜드를 사로잡은 열정은 미를 창조하려는 열정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마음이 한시도 평안하지 않았지요. 그 열정이 그 사람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녔으니까요. (276쪽)

 

예술의 영혼에 사로잡힌 사람은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같다고 하는군요. 자신을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 부분에서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어요.

 

예술혼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도 어찌 못 하지만 또 스스로 예술을 하지 않으면 마치 죽은 삶이라 생각한다는 것을 스트릭랜드의 대사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69쪽)

 

스트릭랜드에게 그림은 죽고 사는 문제였던 거예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익사할 것 같은 기분, 그렇기에 그는 살려고 그림을 시작했고 증권맨으로 살 때의 그는 숨을 참고 있었다면 이제야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못할 행동 같습니다만 이것이 천재 예술가의 전제조건인가 싶기도 합니다.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자신의 목숨이고 삶 같은 거 말이예요.

 

“난 과거를 생각지 않소. 중요한 것은 영원한 현재뿐이지.” (112쪽)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지원자인 더크 스트로브의 아내인 블란치와 불륜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곧 미련 없이 떠나요. 블란치는 괴로움에 자살을 하고, 스트릭랜드는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죠. 남녀 간의 사랑은 그에게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것에도 스트릭랜드의 마음의 무게추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잠깐 움직이더라도 이내 현재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예술혼으로 무게추가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거든요.

 

스트릭랜드는 말년에 타히티에 정착해서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세계를 만난 듯 인생 역작을 그려내는데요. 제목에서 말하는 ‘달’과 ‘6펜스’에서 달의 세계를 만났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달은 영혼의 세계, 이상 세계를 말하고, 6펜스는 현실, 돈과 물질의 세계라고 합니다. 달을 좇았던 스트릭랜드에게 6펜스는 블란치와도 같은 것이었을테죠. 잠시 마음이 움직일 순 있어도 자신을 영원히 사로잡을 수는 없는 존재같은 거요.

 

달과 6펜스는 엄연히 이 세상에 공존하지만 천재 예술가에겐 두 세계에 같이 몸 담을 수는 없었나봐요. 달을 추구하려면 6펜스의 세계는 버려야만 하고, 6펜스의 세계에서는 아름다운 달을 추구할 순 없었겠지요. 보편적 욕망을 따르는 우리는 그래서 더욱 고갱의 그림 앞에서 감탄을 금치 못하나 봅니다.

 

728x90

'배움 >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15) 2020.05.25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12) 2020.05.18
그리스인 조르바  (16) 2020.05.04
셰익스피어 5대 희극  (13) 2020.04.27
페스트  (14)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