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징비록

꿈트리숲 2020. 8. 10. 00:06

 

 

우리 역사에서 수많은 전쟁 중 가장 뼈아프면서도 오래도록 회자되는 전쟁이라하면 아마 임진왜란일 겁니다. 무려 7년(정유재란 포함)이나 이어지기도 했거니와 우리의 무능함을 여실히 확인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건국 이후 큰 전쟁 없이 200년 평화의 시기가 이어집니다.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을 즈음 율곡 이이 선생은 10만 대군을 양병해야 한다고 선조에게 간청하지만 묵살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데도 큰 관심이 없었죠. 반면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를 하고 기회를 엿보다 1592년 4월 13일 부산포로 침범해 들어옵니다.

 

5월 3일엔 한양을 함락하고요. 그전에 선조는 이미 평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우리에겐 참 치욕스러운 역사이지요. 400년도 더 된 이 이야기가 이토록 생생하게 남을 수 있었던 건 부끄러운 역사임에도 기록해두었던 우리 선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애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이 바로 그 기록이에요.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제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어서 그렇고요. 또 임진왜란의 전후 상황을 체계적, 종합적으로 구성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징비록>의 ‘징비’의 뜻을 알면 유성룡 선생이 후손을 얼마나 생각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징비’란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하기 위해 쓴 글이다.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중에서-

 

지옥 같았던 전쟁, 치욕의 피난사, 신하들의 분란, 백성들의 원망 등 모두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역사를 잊지 말라는 뜻을 강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린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도 기록하니 후손들이여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고 대대손손 이 땅을 지켜 주시오 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 같았어요.

 

4월 30일 새벽, 임금께서 서쪽을 향해 출발하셨다.

대신들이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전하께서는 잠시 평양으로 가시도록 하옵소서. 그런 다음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권협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바라옵건대 서울을 반드시 지키십시오. 참으로 서울을 버리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

밭에서 일하던 사람이 일행을 바라보더니 통곡하며 말하였다.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린 누굴 믿고 살아간단 말입니까?”(68~72쪽)

 

오합지졸의 군대도, 명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킨 것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것은 정말 치욕의 역사가 아닐 수가 없어요. 뒷일을 도모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명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안타까운 역사입니다. 평시엔 몰라도 전시에 위기 상황에는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임진왜란을 통해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것도 극명하게 빛나는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로요. 위기가 닥치면 궁궐도 백성도 다 내팽개치고 도망가는 리더가 있는 반면, 다른 나라 장군이 감동해서 우리 임금에게 칭찬의 글을 올리는 그런 리더도 있습니다.

 

진린(명나라 장군)은 임금께 이런 글을 올렸다.

“통제사는 천하를 다스릴 만한 인재요, 하늘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해 낼 공이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쓴 것은 그가 마음으로부터 감복했기 때문이다. (207쪽)

 

<최진기의 끝내주는 전쟁사 특강 1>에서는 임진왜란을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세계 최강의 해군과 세계 최강의 육군이 맞붙은 전투라고요. 세계 최강의 해군인 조선의 해군에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빛나는 리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뼈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이긴 하지만 나라를 지켜냈기에 이런 기록도 남길 수 있었던거라 전 생각이 됩니다. 육지에선 의병이, 바다에선 이순신 장군과 수많은 이름 없는 해군이 지킨 나라를 유성룡 선생이 반성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 나라를 쭉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그분들은 수백 년 후에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귀한 종이에 귀한 먹을 갈아 글을 남기셨습니다. (책 머리 중)

 
역사적 교훈 이외에도 전 블로거로서 진실한 기록만이 오래 살아남는다는 교훈도 추가로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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