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허클베리 핀의 모험

꿈트리숲 2020. 8. 24. 06:00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두 소설 항상 헷갈리는 이야기였는데, 이번에 확실히 구분해두려고 책을 펼쳤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두 권을 놓고 어느 것을 볼까 망설이다가 허클베리를 선택했어요. 그 이유는 톰의 악동 모험담보다 허클베리의 성장담에 더 매력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톰과 허클베리는 미시시피강 기슭 시골 마을에 사는 친구입니다. 좋은 말로 개구쟁이, 달리 말하면 장난꾸러기 악동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똑같은 개구쟁이 같아도 둘은 차이점이 있는데요. 톰은 밝고 영리하며 훌륭한 가문에서 교육을 잘 받은 아이입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규칙을 따르려고 하죠. 반면 허클베리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 거짓말도 곧잘 하고 항상 어디론가 도망치려는 아이예요.

 

허클베리(이하 ‘헉’)는 더글러스 부인의 양자로 들어가 학교도 다니고 성경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헉은 규범과 규칙이 영 못마땅해서 늘 도망치려고 해요. 더욱이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돈이 떨어지면 헉을 찾아와 매질을 하기에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가르치려는 더글러스 부인과 왓슨 자매로부터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도망친 헉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모험을 시작합니다. 모험에는 으레 동무가 있게 마련이지요. ‘짐’이라는 노예입니다. ‘짐’은 자신의 주인 왓슨 부인이 자신을 팔아버리려 해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헉과 짐, 백인과 흑인이지만 종교도 관습도 없는 미시시피강 위의 뗏목에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서로에게 말동무가 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서로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둘은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와 자유를 향해, 규칙과 규범으로부터 도망쳐 자유를 찾아 함께 모험을 합니다.

 

모험 중에 탐욕에 눈먼 사람, 위선자들 그리고 사기꾼등 다양한 인간들을 만나는데요. 그러다 짐과 헤어지게 됩니다. 사기꾼들이 짐을 다른 마을에 팔아버렸어요. 이때 헉은 짐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놔둘 것인지 고민을 합니다. 지금 우리 같으면 당연히 구해야지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시대가 시대인만큼 헉은 갈등을 꽤나 해요.

 

노예가 도망치도록 도와주면 지옥에 떨어진다고 배웠기에, 또 왓슨 아줌마를 배신하는 것 같아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나 그의 선택은 짐을 구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어찌 된 일인지 짐에게 나쁜 감정을 품었던 때는 전혀 생각나지 않고 좋았던 순간만 떠올랐다. (...) 여러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마다 그토록 기뻐하던 짐의 모습이 눈앞에 잡힐 듯이 그려졌다. (...)

 

나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짐을 다시 노예로 만드느냐, 아니면 펠프스의 집에서 구출해 자유를 맛보게 하느냐, 이 둘 중 한쪽을 결정해야 했다. 나는 내가 어느 쪽을 택할지 알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잠시 망설인 끝에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좋아, 난 지옥에 가겠어!” (217~218쪽)

 

전 이 대목이 가장 헉 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헉이기에 그렇습니다. 짐과 뗏목 생활을 하며 흑인도 백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된 헉이 이제 자신뿐만 아니라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관습과 규칙을 따르느냐 친구를 구하느냐,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이 십 대 아이에겐 쉽지 않지만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헉에게 응원을 보내며 끝까지 읽었습니다.

 

끝이 허클베리의 영웅적인 면을 부각해서 짐을 구출하는 장면으로 끝났다면 더 통쾌하고 짜릿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해서 좀 아쉽긴 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결말일지도 모르죠. 모험과 이상을 좇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는 아직 배울 것이 더 많고 힘이 더 필요한 아이라는 걸 일깨워주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종교와 관습으로 굳어진 어른들의 세계는 생각보다 견고함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모험은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해서 전혀 쓸모가 없는게 아닌 것 같아요. 모험의 과정 속에는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들이 들어있습니다. 사람이 됐든, 환경이 됐든 그것들과 부딪히며 깎이고 연마되는 중에 나는 한 뼘 성장합니다.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나는 모험을 시작하기 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지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미지의 세상을 다시 탐험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자리 잡고요. 고난과 역경은 상수이지만 나의 태도에 따라 좋은 쪽으로 작용할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더 넓은 세계, 더 다양한 사람을 품을 넉넉한 마음이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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