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추석 잘 보내셨나요? - 추석인사의 바른 표현

꿈트리숲 2020. 10. 16. 06:00

 

한가위 아침에 산책하며 찍은 현수막 - 모두 '되세요'로 대동단결

 

추석이 지난 지 보름이나 됐는데, 뜬금없이 웬 추석 인사냐고요? 우리가 흔히 하는 추석 인사가 어법에 맞지 않다는 걸 알고계셨나요? 명절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저는 좀 갸우뚱했었어요. '되세요'는 주어와 보어(위 문장에서는 한가위)가 일치하는 동사라고 배웠는데, 한가위나 명절은 듣는 사람(위 문장들에서 생략된 주어)과 같다고 볼 수 없거든요.

 

명절 인사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문자로 좋은 하루 되세요. 편안한 밤 되세요. 등의 인사를 받곤 하는데요. 워낙 많은 사람이 ‘되세요’ 어미로 인사를 하기에 제가 잘못 알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의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기사를 만났어요.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의 서술어 '되다'는 앞에 보어(補語)의 도움 없이 쓰일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그 앞에 '기워주는 말'인 보어가 와야 한다. "그는 중학생이 되었다"에서 '되다' 앞에 쓰인 '중학생이'가 보어다. 이때, 보어는 주어와 동격이므로 '그(주어)=중학생(보어)'이 된다.

 

"한가위 되세요"를 분석해 보자. 생략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어는 뭘까? 주어가 흔히 생략되는 우리말에서 주어는 대체로 청자인 '당신'이다. 그러면 이 문장은 "당신은 한가위 되세요"가 되는데, '당신'은 한가위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당신은 '주말'도 '여행'도, '시간'도 '쇼핑'도 될 수 없다.

 

그런데 '한가위 되라'는 덕담을 건네면서 아무도 상대를 한가위로 만들 의도는 없다. 화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나는) 다가오는 명절이 (당신에게) 넉넉한 한가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다가오는 명절이 (당신에게) 넉넉한 한가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이 어떤 조화를 부려야 "한가위 되세요"가 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하여 주어를 보어인 한가위와 같은 뜻인 '명절'이라고 본다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되세요'는 명령형 어미다. 무정 명사인 '명절'을 의인화하지 않는 이상, 명절에다 명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월 1일 자 오마이뉴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명절 인사 잘못하셨습니다>

 

한가위뿐만 아니라 좋은 하루, 즐거운 주말, 행복한 쇼핑, 편안한 오후 등에는 ‘되세요’를 바로 붙일 수 없다는 건데요. 이는 듣는 사람과 하루, 주말, 쇼핑 등이 동격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른 인사가 될까요?

 

 

현수막 열에 하나 정도는 어법에 맞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명절 같은 경우엔 ‘보내세요, 쇠세요’를 써야 맞는 표현입니다. ‘넉넉한 한가위 보내세요’ 처럼요. 기사에서 친절히 예시까지 들어놓았어요.

 

어법에 맞게 쓰기는 매우 간단하다. 내 뜻이 드러나게 하려면 '되세요' 대신에 '보내세요', '쇠세요', '지내세요' 등의 서술어를 쓰면 된다.

 

넉넉한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넉넉하게 쇠세요.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행복하게 보내세요.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 한가위 즐겁게 지내세요.

 

'한가위'를 꾸미는 '넉넉한'·'행복한'·'즐거운' 등의 관형어는 '되세요' 앞으로 옮겨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어로 자리바꿈을 했다. 그래서 훨씬 우리말 어법에 가까운 문장이 되었다. 문장에서 체언을 꾸미는 관형어는 서술어 앞으로 자리를 옮겨 부사어로 쓰이는 게 올바른 어법에 가까운 것이다. -위 신문 같은 기사-

 

저는 주로 보내세요를 많이 썼는데요. '즐거운 한가위, 행복한 명절, 편안한 저녁' 뒤에 '보내세요'를 붙이는 식이었죠. 그런데 이도 우리말 어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더라고요. 한가위 즐겁게 쇠세요, 명절 행복하게 지내세요, 저녁 편안하게 보내세요 등으로 쓰는 게 우리말 어법에 더 가까운 문장이라고 합니다.

 

관형어를 체언(명사, 대명사 등) 앞에 두어 꾸미는 말(넉넉한 한가위, 즐거운 주말, 편안한 저녁 등)을 많이 쓰는데요. 이는 외국어 번역체 문장에 우리가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하는군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는 것, 블로그 쓰면서 하나 둘 배워나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좋은 하루 되세요’를 사용한다고 혹시 표준이 바뀌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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