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일상

바나나는 갈색 반점을 만들며 익어갑니다

꿈트리숲 2020. 10. 27. 06:00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바나나는 무척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바나나를 판매하는 단위도 지금의 한 송이가 아니라 낱개 하나씩 팔았거든요. 낱개 한 개의 값이 거의 4,000원 정도 했었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무시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날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었어요.

 

소풍날이나 생일, 어린이날 등 먹을 수 있었던 바나나가 지금은 하루에도 몇 개씩 먹을 수 있을 만큼 흔해졌고 가격도 싸졌어요. 싸니까 한 송이씩 사두고 하루에 한 개씩 먹고 있는데요. 다 먹어갈 때쯤이면 바나나에 갈색 반점이 많이 생겨서 식감이 많이 떨어지곤 합니다.

 

바나나가 언제 가장 영양가 높고 맛있는 때 인지 혹시 아시나요? 샛노란 바나나에서 진한 노란색으로 바뀌며 갈색 반점이 점점이 생길 때가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저는 샛노란 색에서 노랑으로 진입 직후의 바나나가 맛있다고 느끼고, 딸은 샛노란 바나나가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마다 입맛이 다 다르네요.

 

 

 

빨리 먹지 않아서 싱크대 위에서 갈색 반점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는 바나나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문득 그 바나나가 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샛노란 청춘의 시대를 지나서 얼굴에 갈색 기미를 띠며 중년으로 향하는 저의 모습과 묘하게 닮았습니다. 덤으로 흰 머리카락과 주름도 얻고 있어요.

 

샛노란 바나나는 단단한 정도가 탱탱하다 못해 딱딱한 정도인데요. 저의 청춘 시절도 샛노란 바나나와 다르지 않았어요. 뜻을 굽힐 줄 모르고 나만 옳다고 머리 꼿꼿하게 들고요. 겉모습은 최신 유행 옷으로 휘감고 반짝반짝 윤을 내고 있었지요. 마치 갑옷을 입고 그 어떤 칼도 나를 뚫을 수 없을 것처럼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제 모습이 샛노란 바나나와 겹쳐집니다. 여물지 않은 벼가 푸릇푸릇할 때처럼 청춘은 푸르렀겠지만 제 안에 여문 지혜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시기였죠.

 

찐노랑 바나나가 샛노랑 바나나 때를 후회하지 않듯, 저도 그 시절을 후회하지 않아요. 또 점박이 바나나가 푸릇푸릇 바나나를 시기하지 않듯, 저도 옆에 있는 청춘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에서,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 부럽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돌아가더라도 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저 배움으로 머리 숙일 줄 아는 지금이 더없이 좋습니다.

 

단단하던 바나나가 꼿꼿함을 내려놓고 자신을 몰랑몰랑하게 만들면서 더 익어가듯이 삶의 지혜를 얻는 데는 놓아야 할 것들이 있어요. 쓸데없는 자존심, 자만심, 허영심, 열등감 등을 내려놓아야 더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바나나가 바나나의 정체성마저 포기하고 갈색 반점을 얻으면 안 되겠죠.

 

저도 저의 정체성과 자존감, 나를 사랑하는 마음,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꿈은 꼭 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휠 줄도 알고 말랑말랑 해질 줄도 아는 바나나는 인생을 알아가는 재미를 터득한 듯 싶습니다.  ‘바나나가 가장 맛있을 때다. 가장 맛있으면서 영양가도 높을 때다’라는 말, 과일에는 더 없는 찬사가 아닐까요?

 

사람에게도 갈색 반점이 생기는 중년을 나이 들었다고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젊음이 빠져나간 자리에 원숙미가 무르익고 지혜가 들어차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바나나의 갈색 반점처럼 우리의 얼굴에 조금씩 생기는 기미도 ‘사람으로서 가장 지혜로울 때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나이 먹는 것이 더는 걱정과 불안이 아닐 것 같아요. 세월과 함께 익어가고 시간의 세례로 여물어가는 저는 오늘도 바나나처럼 지혜의 갈색 반점을 하나 더 늘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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