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인문학

한국명작단편

꿈트리숲 2020. 11. 23. 06:00

 

 

매주 한 편씩 문학, 역사, 철학 작품을 읽어온 지 벌써 11개월이 됐어요. 그동안 읽었던 책을 쭉 훑어보니 우리나라 문학, 그중에도 근대 문학은 한편도 없더라고요. 때마침 고전 지도사 수업 과정 중에 한국 명작 단편집을 읽게 되어 소개를 드립니다.

 

한국 명작 단편은 고등학생 때 몇 번 읽었었어요. 아마도 그게 제가 문학을 문학이라 느끼고 읽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씌어 진 소설이 이제는 100년 가까이 되었더라고요. 작품의 가치가 세월이 더해져서 더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100년 후에도 읽고 싶은 한국명작단편>에는 단편 소설 15편이 들어있습니다. 김동인, 현진건, 김유정, 이효석, 염상섭 등 우리나라 근대 소설의 대표 작가 16명의 작품이죠. 십 대 때 읽고 거의 30년 만에 다시 읽으니 감회가 새롭기보다는 작품의 내용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여성의 지위와 생활이 너무 비참하고 암담했기 때문인데요. 십 대 때는 보이지 않았던 여성의 삶이 크게 보여서 읽는 내내 좀 불편했습니다.

 

16편의 단편 소설 중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1923년에 발표된 박종화의 소설 <목매이는 여자>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근대 소설임에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된 그 시점이에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쓴 역사소설인데요. 주인공이 단종도 수양대군도 아닌 신숙주와 그의 아내입니다.

 

신숙주는 문종으로부터 자신이 죽고 나면 어린 단종을 잘 부탁한다는 부탁을 받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과도 함께 부탁을 받았어요. 그런데 단종 즉위 1년 후 수양대군은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찬탈을 했지요. 단종에 충성을 맹세했던 신하들을 회유합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성을 거부하다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요. 신숙주 역시 세조가 된 수양대군으로부터 충성을 강요받았을 때 고민을 합니다. 평소 자신의 신념대로라면 사육신과 뜻을 같이해야만 하는데요. 집에 있는 가족들 특히나 여덟 명이나 되는 아들이 제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걸 생각하니 선뜻 세조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는 겁니다.

 

신숙주는 세조의 편으로 돌아섰어요. 집에 와서는 아내의 얼굴을 도저히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신숙주와 달리 아내 윤 씨는 마음의 준비를 벌써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이오, 열녀는 두 사나이를 고치지 않는 법이라 말하며 이 일을 행하지 못하면 사람이랄 게 없다. 뿐만 아니라 금수만도 못한 것이라 하던 그의 언행을 보면 반드시 수양대군을 임금 위에서 내쫓고 다시 단종을 왕위에 앉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죽음, 자기 남편은-죽음의 길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340쪽

 

남편이 충신이 된다면 윤 씨는 죽어서 충신의 가족으로 남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의 변절은 가히 충격적이었지요. 살아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는 묻습니다. 왜 영감은 죽지 않고 돌아왔냐고요. 신숙주는 아이들 때문에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하는데요. 충신이 되기로 절개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한 이에게는 가족의 안위 따위는 결정 번복에 지장을 줄 수 없음이 느껴집니다. 역적의 아내로 살 수 없었던 윤 씨 부인은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며 소설은 끝납니다. 1920~30년대엔 친일했던 변절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배신의 아이콘 신숙주를 소설에 등장시켰다고 합니다. 박종화의 <목매이는 여자>도 그런 성격이었을 것 같아요. 목숨 vs 명예, 사익 vs 공익이 충돌할 때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쉽게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소설이 발표되었던 당시에는 명예와 공익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졌을 것 같습니다.

 

신숙주와 아내 윤 씨 둘 다 남겨질 가족을 걱정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삶을 선택했고, 한 사람은 죽음을 선택했어요. 극명하게 갈린 두 사람의 선택. 그 평가는 역사가 해 주겠지요.

 

소설의 내용과 달리 신숙주의 아내는 사육신 사건이 있기 몇 달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은 역사적 사건인데, 신숙주의 아내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부분이에요. 그 상상력 덕분에 신숙주를 단순히 변절자라고만 여겼던 제 생각이 다른 편에서도 그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네요. 그도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구나 하고요. 우리의 아버지들도 그리고 남편들도 가족을 생각하여 무릎 꿇는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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